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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상 가장 결정적인 순간 '워터루'

* 게재된 원고의 저작권은 기고자에게 있으며, 관련 내용은 육군의 공식입장은 아닙니다.

감독 :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출연 : 로드 스타이거, 크리스토퍼 플러머, 오손 웰스


워터루 전투 1815년

영화 워터루는 워터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로 이탈리아와 러시아가 공동으로 제작하였으며1971년 영국 아카데미 미술상과 의상상을 수상하였고 촬영상 후보에 올랐다. 나폴레옹역은 로드 스타이거, 웰링턴 장군역에 크리소토퍼 플러머가 연기했다. 감독과 각본은 러시아의 거장 감독인 세르게이 본다르추크가 맡았다. 영화의 대략적인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전 유럽을 제패하여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의 군대는 1812년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면서 운세도 기울어져, 1814년 3월 영국,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군이 합세한 연합군에 의해 파리를 점령당한다. 그는 군사들을 뒤로하고 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엘바섬으로 유배된다. 그러나 이듬해인 1815년 3월 엘바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입성해 황제에 즉위한 나폴레옹은 즉시 재정을 준비하고 공격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결국 나폴레옹은 워터루에서 연합군과 마지막 일전을 치루게 된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를 영화로 만나다

1815년 6월 나폴레옹은 12만 5천명의 프랑스군을 이끌고 웰링턴이 지휘하는 약 9만 5천명의 영국군과 네델란드군 그리고 블뤼허가 지휘하는 약 12만의 프로이센군과 벨기에 남동쪽 워터루 남방 교외에서 생애 마지막 전투를 치루게 된다.


1815년 6월 나폴레옹은 12만 5천명의 프랑스군을 이끌고 웰링턴이 지휘하는 약 9만 5천명의 영국군과 네델란드군 그리고 블뤼허가 지휘하는 약 12만의 프로이센군과 벨기에 남동쪽 워터루 남방 교외에서 생애 마지막 전투를 치루게 된다

당시 나폴레옹의 전략은 분산되어 있는 연합군의 전력을 각개격파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6월 16일 리니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파해 퇴각시키고, 6월 18일 워터루에서 영국군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날의 전투는 프랑스군의 승리로 기우는 듯했지만, 퇴각했던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이 다시 전장에 가담하여 전세가 역전되었고 결국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은 이 전투에서 영국군과 네델란드군 그리고 프로이센군의 공세에 의해 처참하게 패배하였다.

프랑스군의 전사자는 4만명에 이르렀으며, 영국군과 네델란드군의 전사자는 1만 5천명, 프로이센군은 7천명 가량이었다.


보병의 지원 없이 영국군과 네델란드군의 우익 중앙을 공격하던 프랑스 기병대는 영국 보병과 기병의 반격으로 큰 손실을 입는다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씬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퇴각했던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이 다시 전장에 가담하여 전세가 역전되었고 결국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은 이 전투에서 영국군과 네델란드군 그리고 프로이센군의 공세에 의해 처참하게 패배하였다

특히 워터루 전투는 군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전투의 정황과 관련된 자료가 많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라는 비극성과 마지막의 묘한 반전 때문이다. 이와 함께 워터루의 전장은 특별한 광채에 둘러싸여 있었다. 당대 최고의 군사 전략가인 나폴레옹과 웰링턴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름난 최고 사령관들은 언제나 약한 상대를 만나 승리를 거두었는데 워터루라는 전장에서 두 사람의 대가가 만나 결전을 치룬것이다. 거기에다 블뤼허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켰다. 전투가 절정에 달했을 때 드라마틱한 구원자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극적인 반전을 이룬 워터루 전투는 인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영화 워터루는 이러한 당시의 전투를 군더더기 없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는데 성공했다. 특히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씬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대서양의 외딴 섬인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영국군의 감시를 받으며 울분의 나날을 보내다 1820년 5월 세상을 떠났다. 나폴레옹의 재집권은 백일천하로 끝났고 워털루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와 유럽 국가들간의 23년에 걸친 오랜 전쟁도 끝이 났다. 그리고 이로부터 100여년간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1974년 워터루는 다시 한번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 해 유러비전 그랑프리를 수상한 곡은 바로 아바(ABBA)의 워터루이다. 하지만 이 곡은 사실 워터루 전투와는 별 상관이 없으며 희생자를 추모하는 내용과도 거리가 멀다. 단지 워터루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를 곡에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나폴레옹이 항복한 곳. 오 그래, 내 운명도 마찬가지네 너에게 정복당한 나 너를 언제나 사랑하리.” 즉, 이곡은 사랑의 노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