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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하軍/생생! 병영탐구

육군사관학교를 가다 中편


"예비생도들은 신속히 차량에 탑승해주시길 바랍니다!"

행사가 모두 마치자, 스피커에서는 헤어짐을 알리는 목소리가 강당을 울려퍼졌다. 예비생도와 가족친지들로 이내 분주해지기 시작하였다. 언제나 이별은 슬픔이 동반된다. 그것도 20년동안 애지중지 키워 온 사랑하는 자식을 군에 보낸다는 것은 실로 말할 수 없는 슬픔이다.




"엄마! 걱정마! 잘 다녀올게요!"

곳곳에서 이별을 아쉬워하는 풍경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 흘리는 이름 모를 어머님의 눈물, 나 또한 낯설지 않았다. 지난 추운 겨울, 102보충대에서 나를 떠나보내며 펑펑 우시던 내 어머니의 눈물과 똑같았다.

애써 울지 않을려고, 고개 한 번 안 돌리고, 떠난 초라한 내 뒷모습이 아스란히 떠올랐다. 이미 예비역이 된 나였지만, 좀처럼 이런 광경은 익숙치 않았다.




연약해보이고 앳되 보이기만 하는 어린 소녀도 그 때의 나처럼 묵묵히 가족의 품을 떠나 버스로 향하였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군복을 입은 군인들만이 그 기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꿈일꺼야!"

당시의 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눈 앞에 있는 예비생도들은 당당하게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에, 당시의 나보다는 훨씬 담담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래도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슬퍼보였다.




"건강해! 밥 많이 먹고!"

예비생도들은 하나 둘씩 버스로 향하고,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오로지 자식 걱정을 하며 배웅하였다.




"아자 아자 파이팅!"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그녀는 버스에 바짝 다가가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광경에서 떠나간 나의 첫사랑이 오버랩되었다. 백일휴가를 복귀하였을 때였지 싶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강원도로 가는 버스를 탄, 나를 배웅해주던 천사같은 그녀의 모습, 그 순간, 내가 군인이라는 사실이 무척 힘들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무엇이 그리 급한지, 버스는 이내 힘찬 시동소리와 함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부모님은 철부지 어린 아이가 아니라, 늠름한 생도가 된 자랑스런 모습으로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이별은 다시 만날 만남을 기대하게 된다.

지금 이 시간, 복 받치는 슬픔이 훗날 더 큰 기쁨으로 찾아 올 것이다. 나는 이미 겪었기에 알겠지만, 저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힘든 시간이다.




"시간이 약이다!"

나중에는 자주 나온다고 구박하는 날이 분명히 온다. 나 또한, 그랬고, 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2010년 1월 25일, 육군사관학교에서의 슬픈 이별은 서서히 막이 내렸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내일까지 그들의 모습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슬퍼하는 가족들을 뒤로 한 채, 다시 예비생도를 따라 생도대로 이동하였다.




언론에도 철저하게 통제된 그들의 모습을 아미누리 필진 자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멋진 장교로 탈바꿈하기 위해 모든 환경이 철저하게 바뀔 것이다. 소대원들을 생명을 책임져야하는 소대장이 되어야하는 그들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힘들게 육성되어 질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외모부터 군인답게 바꿔야한다. 생도대에 도착한 예비 생도들은 지하에 위치한 이발소로 이동하였다. 대다수가 입소할 때 머리를 다듬고 왔지만, 다시 한번 규정에 맞게 두발정리를 하여야 한다. 물론 어차피 이발을 해야 되는 것을 알기에 안하고 온 쿨한 생도들도 있었다.




"한방에 짤라야죠!"

조금이라도 기른 머리를 아쉬워하며 의자에 앉은 예비생도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그러고보니 이들은 앞으로 오랜 시간동안 머리를 기를 수 없을 것이다.

학창시절 때부터 온갖 멋을 마음껏 부릴 수 있는 멋진 캠퍼스생활을 꿈꿔왔을 수도 있지만, 이제 이들이 가야할 길과는 전혀 다른다. 향후 군복을 벗는 순간까지 짧디 짧은 머리로 생활하여야만 한다.





"씁쓸해!"

차가운 물때문일까? 어색한 머리때문일까? 예비생도는 한껏 인상을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 뒤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예비생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과연 잘한 선택일까?"

습관적으로 이마에 손을 대보았지만, 이미 머리카락은 없었다. 그렇게 예비생도들의 모습만 카메라에 담던 나는 문득 열심히 이발을 해주는 병사들이 눈에 보였다. 내가 생활하던 부대에서는 소대에 정식 이발병이 없었다.




그저 사수인 이발병이 마음에 드는 후임을 부사수로 정하였고, 그 것이 계속 이어져내려왔다. 우리는 그들을 깍새라 불렀다. 원래 전문적으로 미용교육을 받지 않은 병사들이기에 이발실력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너 대학교에서 머 공부왔나?"

"건축디자인 배우다 왔습니다!"

"디자인이라? 굿굿! 오늘부터 깍새다!"

"............"

늘 이런 식이었다. 물론,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읆는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하다보면 어느정도 괜찮은 수준이 된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었다.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아!"

그러나 이 곳에 있는 이발병은 내가 소대에서 봐왔던 깍새들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전문적으로 미용교육을 받은 거 마냥, 능수능란하게 이발을 실시하고 있었다. 상급부대의 경우, 전문 이발병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실력은 꽤나 출중하였다.




"우린 프로페셔널이지 말입니다!"

날카로운 눈빛, 흔들리지 않는 팔의 각도, 마치 자를 재고 자르듯 정확하게 움직이는 가위질까지 확실히 그들은 프로였다. 또한, 예비생도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더욱 정성을 다해 이발을 하고 있었다.




"누가 우리를 깍새라 부릅니까? 우린 아티스트지 말입니다!"

이렇듯 육군사관학교에는 생도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훌륭한 장교를 육성하기 위해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장병들도 존재한다. 생도들의 일용한 양식을 만들어 주는 취사병, 부대 경계를 책임지는 헌병, 그 외 수많은 보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병들, 그들이 있어서 너무 든든하였다.

아직까지는 평온한 생도대의 모습, 선배 생도들도 연신 웃으며 친절하게 이것 저것 예비생도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잠시 후 진짜 생도가 되기 위해 펼쳐지는 그들의 험난한 훈육과정을 말이다.

 To be continued

   posted by 악랄가츠(http://realo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