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유명한 먹거리 골목이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갖가지 식당 및 식료품 가게들이 늘어선 곳이다. 그곳은 아주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 있는 골목인 까닭에 주차를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늘 주차문제로 인한 크고 작은 시비들이 끊이질 않았다. 주차한 차가 가게를 가린다며 가게 주인들은 주차를 하지 못하게 했고, 도로 양 옆으로 모두 차가 서 있어 지나가지 못하는 차들이 경적을 소란스럽게 울려댔다.
주차로 인한 시비와 소란 때문에 그곳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손님이 줄자 가게의 주인들은 예민해졌고, 자기 가게 앞에는 자기 가게를 들르는 사람들만 주차를 할 수 있도록 철저히 단속을 했다. 그래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폭이 좁은 도로 양 옆으로 주차가 되어 있으면 다른 차들이 도로를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갈등을 깔끔하게 해결해 준 것은 '약속'이었다. 가게의 주인들은 '홀짝 주차제'를 시행하기로 약속했다. 자신의 가게 들른 손님이든 아니든, 정해진 날엔 약속된 쪽 도로에 차를 세울 수 있게 한 것이다. '홀짝 주차제'를 시행한 이후 그곳에서 주차문제로 인한 갈등은 벌어지지 않았다. 주차장소의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전처럼 도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일은 없어졌다. 그러자 다시 손님들이 그 골목을 찾기 시작했고, 지금은 인근 골목들도 그 '홀짝 주차제'를 모범사례로 삼아 따라하고 있다.
이 재미없는 '먹거리 골목'얘기를 한 까닭은, 연인 사이에 세워둬야 하는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저 호감에 끌려 연애를 시작하고 감정이 이끄는 대로 연애를 하다보면, 위의 이야기에서처럼 소란스러운 다툼만 계속 하게 될 위험이 있다. '홀짝 주차제'처럼, 연인 사이에 지켜야 할 것들을 미리 정해두면 어떨까? 오늘은 곰신들의 사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다섯 가지 문제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자.
훈련이나 교육, 행사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하루에 한 번은 꼭 연락을 하기로 약속하기 바란다. 지금 막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곰신들의 경우 저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며 '연락 없는 남친' 때문에 힘들어 하는 곰신들이 많다. 연락을 하지 못한 날에는 편지를 쓰거나 웹 공간에 글을 남기기로 약속하자.
정말 중요한 건, 위의 약속은 둘이 다툰 후에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는 기분이 좋을 때 보다 그렇지 않을 때 더 필요하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든 둘이 대화 할 수 있는 창구는 닫지 않도록 노력하자. 어떤 상황에서건 서로를 팽개치지 않기로 한 약속은,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편지의 경우, 답장을 받으면 다음 편지를 보내는 식으로 주고 받길 권한다. 일부 곰신들은 남자친구가 답장을 하지 않아도 의무적으로 편지를 써서 보내던데, 답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오는 편지는 스팸메일처럼 느껴질 위험이 있다. '통지서'나 '통신문'이 아니라 '대화'가 가능해야 함을 잊지 말자.
'남친 부모님과 함께 가는 면회'에 대해서는 둘이 충분히 대화를 나누길 권한다. 남자친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부모님인 까닭에 '여자친구랑 부모님이 함께 면회를 오면 되겠네.'라며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곰신들이 그 '남친 부모님과 함께 가는 면회'에서 갈등을 겪었다. 함께 가는 차 안에서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남친 부모님께 '심문 당하는 느낌'을 느낀 곰신도 있었고, 면회를 간 자리에서 남친만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자신은 들러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는 곰신도 있었다. 반대로 남친이 여자친구에게만 집중한 까닭에 남친 부모님이 못마땅해 하셨다는 사연도 있었고 말이다.
무작정 '겸사겸사'라며 남친 부모님, 혹은 본 적 없는 남친의 친구들과 함께 면회를 오라는 일이 없도록 미리 약속해 두자. 면회 올 때 곰신의 친구들과 함께 오라고 요청하지 않기로 정해두자. 사회에서 같이 어울리던 친구라면 몰라도, 아직 얼굴 본 적도 없는 친구들을 데리고 오라는 남친들이 종종 있었다. 남친의 고참이나 동기 소개팅을 위해 면회를 가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해 두자.
하나 더, 면회는 둘의 시간과 상황에 여유가 있는지를 살핀 후 가도록 하자.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어떤 상황이라도 면회 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매주 면회를 가야 한다. 곰신이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면회 안 온다고 섭섭해 하는 남친, 한 번 면회를 갔다 오면 경비가 벅찰 정도로 드는데 툭하면 면회 오라는 남친 등의 사연이 있었다. 시간과 상황에 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무적으로 가는 면회가 어찌 즐거울 수 있겠는가. 그런 면회를 한 뒤 둘 다 찝찝한 기분을 갖느니, 조금 서운하더라도 명확하게 이야기를 해 두는 것이 낫다.
내게 도착하는 곰신들의 하소연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분이 '돈'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 역시 처음에는 수신자부담 전화든 뭐든 걸려오면 좋고, 남친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소포 준비하고, 휴가 때 오랜만에 만난 남친에게 맛있고 좋은 거 먹이려고 하고, 면회 갈 때 소대원들 선물까지 사 가지고 가는 거, 이럴 땐 잘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휴대폰 고지서에 찍힌 요금을 확인하고, 이것저것 보내달라는 남친의 요구가 많아지고, 휴가 나온 남친과의 데이트에선 언제나 곰신이 전부 부담하고, 심지어 옷이나 신발 따위를 사 달라는 얘기를 듣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일부 곰신들은 남자친구에게 용돈까지 보내는 경우도 있던데, 그런 희생에 대한 고마움은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부끄럽지만 나도, 군대에 있을 때 수신자부담 전화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점점 미안함이 없어졌다. 수신자부담으로 걸어 휴대폰비가 많이 나왔다는 얘기를 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저 서운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돈'에 대한 둘의 원칙을 정하기 바란다. 곰신은 룰루랄라 사회에서 놀고 있고, 군화 혼자만 군대에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반으로 말이다. 남친의 '풍요로운 군생활'을 위해 곰신이 희생하는 방향으로 흘러선 안 된다. 차라리 남친이 제대하는 그 날,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도록 경비를 마련하는 것이 낫다. 절대로 남친의 '엄마'가 되려 하지 말길 바란다.
대화에 대한 약속은 간단하다. 먼저, 욕을 하거나 비아냥 거리지 말 것. 욕에는 무시하는 말이나 짜증을 내는 말도 포함된다. 이건 꼭 곰신과 군화 뿐만 아니라 모든 연인에게 적용되는 부분이다. 사귀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상대를 함부로 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인들의 싸움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 그 순간에 '연인' 대신 '친한 친구'를 가져다 놓으면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는 걸 알고 있는가? '친한 친구'에게 라면 하지 않을 '험한 말'이나 '짜증' 등으로 인해 많은 커플들이 갈등을 겪는다. 그러니 그런 '막장'이 찾아오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자. 이 약속이 둘에게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약속은 '끊지 않기'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다음에 자신의 얘기를 하도록 약속하자.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자기 얘기를 하느라 상대의 말을 끊은 커플이 대다수다. 그러한 '끊김'은 둘의 대화에 피로감을 쌓이게 하고, 나중엔 대화조차 하기 싫게 만든다.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는 것도 마찬가지다. 화가 나거나 감정이 상했을 때 "됐어, 됐고." 따위의 말로 대화를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 역시 서로를 '남'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연애의 무서운 적이다.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서로를 무시하는 커플은 되지 말길 진심으로 바란다.
휴가 첫 날 저녁식사는 가족들과 함께! 이 얘기에 불만인 곰신들도 있겠지만, 되도록 휴가의 첫 날은 남친이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게 하자. 휴가 첫 날, 부모님을 뵙지도 않고 여자친구부터 찾는 남친들이 많다. 곰신이 아직 어린 까닭에, 가족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남친에게 투정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말이다.
멀리 보자. 곰신이 아들을 낳았고 아들이 커서 군대를 갔는데, 휴가를 나와서는 얼굴도 보이지 않고 여자친구와 함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아들이 대견하고 기특할 것 같은가? 아들에 대한 서운함과 실망을 느낄 것이고, 여자친구는 공범처럼 생각될 것이다. 그러니 휴가 첫 날 저녁식사는 가족들에게 양보하도록 하자. 남친이 정신 못 차리고 친구 만나러 나간다고 해도, 잘 설득해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도록 만들자. 그럼 남친은 곰신을 다시 보게 될 테니 말이다.
술과 게임 등으로 휴가를 다 보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휴가 전부터 둘이 계획을 세우고, 휴가 나와선 그 계획들을 하나씩 함께 하길 권한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그저 상황이 되는 대로 며칠 지내다가 남친이 복귀하는 커플들이 많다. 곰신은 곰신대로 불만이 가득한 채로 말이다. 이러한 약속들은 둘에게 '배려'에 대해 가르쳐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 '연락'과 관련된 부분에 빼 먹은 것이 있는데, '다른 이성과 연락하지 않기'도 약속하길 권한다. 마음먹고 몰래 하는 연락이야 막을 수 없겠지만, '그냥 친구'라든가 '아는 동생' 등의 이유로 연락을 주고받는 건 되도록 피하길 권한다. 다른 이성에게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과, 곁을 주지 않는 것은 연인사이에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이성으로 생각해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불 피우는 곳에 기름통을 가까이 가져가면 의도하지 않아도 불이 옮겨 붙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불상사는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자.
위의 약속들은 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또 많은 것을 절약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오늘도 어떤 커플은 미리 정해진 원칙이 없기에 연락 때문에 싸우고, 휴가 때문에 싸우고, 돈 때문에 싸우고, 면회 때문에 싸울 것이다. 난 이미 오래 전에 군대를 제대했지만, 위에서 이야기 한 원칙 중 일부는 여전히 지키고 있다. 이 글을 읽는 곰신들도 군화와 함께 위의 원칙들을 활용해 예쁜 사랑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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