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든든하軍/생생! 병영탐구

진지공사의 계절

진지공사의 계절

 "내가 싸울 전투진지, 내 손으로 준비한다 "

"25사단 계룡연대 추계진지공사 탐방" 



군생활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로라면 아마도 훈련병시절, 유격과 행군, 혹한기훈련, 그리고 진지공사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일 것입니다. 봄,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진지공사. 과거에는 아예 부대전체가 진지공사 현장으로 이동해 천막을 치고 몇 주 동안 상주하면서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오랜만에 요즘 군대에서 진지공사 모습은 어떤지 육군 제25보병사단 계룡연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 "내가 살 집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진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추계 전투진지공사에 투입된 25사단 계룡연대 장병들의 각오는 남달라 보였습니다. 장병들의 얼굴에는 전장에서 나와 전우들을 지켜줄 진지의 흙벽돌을 내 손으로 직접 쌓아올린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는데요, 이른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계속된 진지공사 현장의 분위기는 힘들지만 화기애애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진지는 어떤 모습인가요? 과거처럼 폐타이어를 이용했던 진지는 흙을 담은 마대에서 이제 흙벽돌로 진화(?)했습니다. 이렇게 흙벽돌로 진지공사를 하는 이유는 내구성이 좋고 파편을 막아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만,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한 친환경적 소재라는 점도 큰 이유라고 합니다. 그럼 장병들의 손놀림이 무척 섬세해 보였던 추계 진지공사 현장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



전투진지공사 현장의 첫 느낌은 마치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마치 하나로 움직이는 듯한 조화였습니다. 장병들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각자 맡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었는데요, 공사의 시작은 장병들이 가파른 언덕을 올라 갖고온 황토로부터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날 진지공사의 목표는 흙벽돌 제조기로 미리 만들어 놓은 흙벽돌을 직사화기로부터 방호가 가능하도록 튼튼하게 쌓아올리는 것이었는데요, 빈틈 없이 차곡차곡 잘 쌓기 위해서는 고운 황토와 시멘트를 어떤 비율로 잘 반죽하느냐가 중요하다는군요.



요즘 전투진지는 예전과 달리 흙벽돌로 만들어진다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기존 폐타이어나 흙을 넣은 마대로 진지를 구축하던 방식에서 흙벽돌로 바뀐 건 환경을 고려한 측면이 큰데요, 자연까지 생각하는 대한민국 군대, 멋지지 않나요? 각 진지에는 대여섯 명의 장병들이 배치돼 흙벽돌을 놓을 바닥을 고르는 조와 시멘트가 들어간 황토 진흙으로 흙벽돌을 쌓는 조 등 분업화로 무척 빠르게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내 집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흙벽돌을 정성껏 쌓아올리고 있습니다!"



"힘든 것도 있지만 전우와 함께해서 든든합니다!"




■ 군에서 처음 접하는 진지공사 노하우(Know-how) 


사실 몇몇 시골이 고향인 장병들을 제외하곤 요즘 입대하는 대부분의 젊은 장병들이 땅을 파고, 흙을 나르고 쌓고 하는 일을 직접 해본적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군에서 처음 접해보는 진지공사는 힘든 육체노동의 경험과 땅의 깊이와 모양새, 흙내음과 흙의 무거움, 진지와 교통호 등을 오랜 시간 서로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 가는 과정들을 배우게 됩니다. 
처음해 보는 일이지만 오랜 시간 견뎌온 전투진지들의 사연 만큼, 오래 전부터 부대의 고참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진지공사 작업 노하우(Know-how)를 바탕으로 익숙해지고 조금씩 발전하기도 합니다.   


땅을 평평하게 다진 이후 흙벽돌을 쌓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흙벽돌도 그냥 위치만 맞춰 쌓는 게 아니라 흉벽의 높이와 두께 등 전체적인 진지 높이와 사격시 손과 팔꿈치를 고정할 수 있는 공간까지 고려해 작업하게 됩니다. 진지의 하단부는 호박돌을 이용하게 되고, 상단부에 흙벽돌을 이용해 쌓게 되는데요, 진지는 교리 규격을 지키되 실지형을 고려해 충분히 넓게 설치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장병의 자부심은 바로 ''에서 나온다고 하던가요? 자로 재면서 놓더라도 이렇게 흙벽돌을 일직선으로 반듯하게 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작업은 일차적으로 ㄷ자 모양으로 흙벽돌을 배치한 후, 2단으로 쌓는 순서로 진행되었는데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흙벽돌을 어루만지는 장병들의 손놀림은 무척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함을 지니고 있더군요. ^^



장병들의 작업에 탄력이 붙을 즈음, 홍미래 중대장이 전투진지공사 현장을 찾았습니다. 홍 중대장은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동시에 매의 눈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즉석에서 맨 손으로 진흙을 만지고 망치로 흙벽돌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명불허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군요.

"지속적으로 전투진지공사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군대라고 해서 군대만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는 진지공사를 하더라도 민간과 조화를 먼저 생각하며 환경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흙벽돌을 사용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작업이나 공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유사시 상황까지 생각하며 '거점의 안방화'라는 자세로 임하는 장병들이 고맙습니다"


■ 땀 흘린 뒤 먹는 중식과 전투진지의 완성 


땀 흘린 후 먹는 식사는 얼마나 맛있을까요? 장병들이 웃는 건 달콤한 식사를 즐기는 휴식이 즐겁기도 한 이유도 있겠지만, 전투진지공사를 하는 동안 피어나는 전우애를 새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실제로 이날 대화를 나눴던 많은 장병들은 전투진지공사를 하면서 나와 전우가 싸울 이 공간을 보수하고 새로 만들면서 내 옆에 있는 전우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고 말하더군요.


시간이 흐르면서 올라간 건 흙벽돌의 높이만은 아니겠죠. 선단 전투진지를 보강하고 신설하면서 장병들은 가슴 한 켠에 자리잡고 있던 전우애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당장이라도 전투가 가능한 진지를 구축했다는 자부심을 느꼈을 겁니다. 

이제 민간과 자연과의 조화까지 고려하는 우리 군대의 유연한 변화를 전투진지공사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진지공사 현장을 떠날 즈음, 만월봉 산자락의 바람은 차가워져 있었지만 장병들의 손을 거쳐간 이 흙벽돌은 유난히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글 / 사진 : 김남용 육군 블로그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