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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남친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곰신, 이유는?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불쾌지수까지 함께 높아져서 일까. 요즘 들어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와 싸웠다는 곰신들의 사연이 늘고 있다. 그런데 사연들을 한데 모아 살펴보니, 공통되는 문제가 보인다. '존중'의 부재가 다툼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어리광도 귀담아 들어주던 남친이 이제는 진지한 이야기들도 잔소리 취급하고, 몇 번 참고 넘어갔던 남자친구의 막말은 더욱 거칠어 졌으며, 시간이 갈수록 지적사항과 요구사항이 늘어나는 것. 이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커플부대원의 사연을 노멀로그에서 다룬 적이 있다. 해당 매뉴얼에서 가장 힘주어 말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건, 좋아하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존중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좋아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떠올려 보자. 자신의 부모님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졌을 경우엔 부모님께 짜증을 내거나 부모님이 상처받을 만한 말을 할 수도 있다. 이제 좀 감이 오지 않는가? 좋아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을 구별하지 않은 채

 

"그만큼밖에 절 좋아하지 않는 걸까요?"

 

라고 묻는 공허한 물음은 그만 두고, 오늘은 '남친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곰신'이 된 이유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알아보자.

 

1. 남자친구의 보호자가 된 곰신

 

SBS에서 방영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다들 한 번쯤은 본 적 있을 것이다. 그 프로그램 제작팀에서 동명의 책을 냈는데, 그 책 두 번째 챕터 '떼가 심하고 고집이 센 우리 아이'에는 아래와 같은 섹션이 소개되어 있다.

 

- 고집대로 안 되면 바닥에 머리를 찧어요.
-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고 늘어져요.
- 웃었다 울었다 변덕이 죽 끓듯 해요.
- 뭐든지 다 제 멋대로 하는 응석 왕이에요.

 

다 큰 남친이 바닥에 머리를 찧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위에서 보이는 문제점들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지 않은가? 남친이 날 좋아하지 않아서 그랬을 거라 생각했던 모습들이 위에서도 보이지 않는가? 아이의 보호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곰신들도 비슷하게 겪고 있다.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느냐 묻는다면, 그건 곰신이 남친의 보호자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라 답할 수 있겠다.

 

보호자가 존중받지 못하게 되는 원인에 관해선 전에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는 영화 <부당거래>의 명대사를 소개하며 이야기 한 적 있으니 길게 적지 않겠다. 원인은 살펴봤으니 해결책을 찾아보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한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는 아래와 같은 방법을 제안한다.

 

-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강하게 말하기.
- 물질보다는 사랑을 주기.
- 대가없는 선행을 가르쳐주기.
- 선물은 꼭 필요한 때에만 해주기.

 

절제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 상대에게 약속이나 맹세를 받아 내는 것이 아니라, 이쪽의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다. 선물에 관한 섹션에 있는

 

"아이가 예쁘다고 자주 선물을 하는 것은, 노력 없이 기대하는 아이로 만듭니다."

 

라는 말을 잊지 말고 기억해두자. 종종

 

"꼭 그렇게 계산하고 따져가며 사랑해야 하나요? 그냥 마음가는대로 사랑하면 안 되는 건가요?"

 

라고 묻는 곰신들이 있는데, 마음이 동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랑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바람에 휘날리며 비상할 땐 기쁘겠지만, 추락하는 순간엔 결코 웃을 수 없을 것이다. 인내와 절제의 뿌리를 깊게 내려 바람에 휘날리지 않는 큰 사랑하길 바란다.

 

2.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곰신

 

자존감과 관련된 사연을 다룰 때 빼놓지 않고 적는 예가 하나 있다. '깨끗한 방'에 대한 이야기다. 그대가 친구 집에 놀러갔다고 해 보자. A라는 친구의 방은 깨끗하다. A는 그대에게 과자를 주었고, 그대는 과자를 다 먹은 뒤 과자봉지만 남은 상황이다.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으면 그대는 당연히

 

"이거 어디다 버려야 해?"

 

라고 물을 것이다. 깨끗한 A의 방에 과자봉지를 아무렇게 둘 수 없으니 말이다. 반대로, 이번엔 B라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고 해보자. B의 방은 지저분하다. 책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고, B가 먹고 버린 듯 보이는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그대는 B에게 과자를 받아서 먹었고, 과자봉지가 남았다. 이번엔 어떻게 하겠는가?

 

전과 다름없이 쓰레기통이 어디 있냐고 물어볼 곰신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 과자봉지를 B가 아무렇게나 어질러 놓은 방구석에 그대로 둘 거라 생각한다. 이미 어질러질 대로 어질러진 방에 과자봉지 하나 던져둔다고 크게 눈에 띄진 않을 테니까.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에게서도 존중을 받지 못한다. 물론 이제 막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연애를 시작했을 때에는 상대의 존중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까닭에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이 존중으로 보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서로를 알아가며 변화가 생긴다. 말의 무게감이나 존재감이 달라진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이 조연인 것처럼 행동하는데,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 역시 그를 조연으로 여기게 된다. 이미 어질러져 있는 방에 과자봉지 하나 더 던져두듯 별 죄책감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솔로부대원들에게만 여러 번 이야기 하고 곰신들에겐 이 말을 할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은 꼭 적어 두어야겠다. 자존감이 없는 여자는 완구에 지나지 않는다. 놀 때는 만지작거리며 열심을 내지만, 그렇지 않을 땐 그냥 장난감 통에 넣어두는 완구 말이다. 저 위에서 이야기 했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는 이런 조언을 한다.

 

"권위적인 부모가 아닌, 권위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라고. 남자친구가 말을 안 듣는다고 화내기 전에, 현재 자신의 무게감과 존재감은 어느 정도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3. 말을 아끼는 곰신


EBS에서 방영한 다큐 중에 <인간의 두 얼굴>이란 다큐가 있다. '사소한 것의 기적'이란 주제를 다뤘던 챕터에, 한강에 놀러온 엄마와 아이의 이야기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있는 한강 공원에서 한 엄마와 아이가 짐을 둔 채 화장실에 다녀오는 실험이었다. 엄마와 아이가 자리를 뜨면, 미리 약속해 둔 사람이 나타나 그 자리에 있는 가방을 훔쳐가는 것이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엄마와 아이가 자리를 떴을 땐, 수상한 남자가 나타나 가방을 가져가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가방을 가져가는 남자를 힐끔힐끔 바라보거나 보고도 못 본 체 했다. 하지만 엄마가 아이와 화장실에 가며

 

"저희 짐 좀 봐주시겠어요?"

 

라는 말을 했을 땐 결과가 전혀 달랐다. 수상한 남자가 나타나 가방을 가져가려 하자, 옆 자리에 있던 사람이 주인 있는 가방이라며 수상한 남자를 제지했고, 다른 사람은 남자가 도망가자 쫓아가서 남자를 잡기까지 했다.

 

정말 사소한 거지만 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내게는 구구절절 사연을 적어 보내면서 남자친구에게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곰신들을 볼 때면 답답하다. 내게 백 마디 하는 것보다 남자친구에게 한 마디 하는 것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효과적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다 얘기하자. 연인 사이에 하지 못할 말이 어디 있겠는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니라면 무슨 말이든 다 괜찮다. 점점 함부로 대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벼르고 있다가 날 잡아서 싸우고 화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남자친구의 그런 모습 때문에 요즘 그대가 힘들다는 것을 차근차근 다 말하길 권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힘들어 진다. 둘의 문제는 둘 앞에 펼쳐놓고 함께 답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늘 얘기하지만 '문제해결'에 목숨을 거는 남자들의 본능을 잘 활용하기 바란다. 위에서 이야기 한 '부탁'은 남자들에게 사용할 경우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여자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면 스스로 무능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남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싸움을 걸어 남자의 공격본능을 자극하지 말고, '부탁'을 사용해 남자들의 문제해결본능을 깨우자.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인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라는 질문을 사용하지 말라는 얘길 해주고 싶다. 저 얘기를 하는 타인을 볼 땐 다들 웃는데, 막상 자신이 화나는 상황에 처하면 저 질문을 가차 없이 사용하는 곰신들이 있다. 저 질문은, 알면 구박받고 모르면 더 무서운 후폭풍이 불어오는 악마의 질문이다.

 

왜 화났는지를 말해주자. 그럼 그 부분에 대해 사과를 하거나 자기변호를 하는 남자친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말을 하지 않고 '아나 모르나 보겠어.'라며 벼르기만 하다간, 남자친구가 지쳐서 포기선언을 하는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처음 몇 번이야 뭘 잘못했는지 몰라도 무작정 잘못했다고 말 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며 남자친구의 태도는

 

"아 몰라, 뭐 나더러 어쩌라고?"

 

로 변해갈 것이다. 앞서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선배 곰신들이 경험한 일이다. 이 사고다발지역에서 다른 사람들이 당한 사고를 똑같이 당하지 말고, 오늘 이야기를 표지판 삼아 얼른 이 위기를 비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