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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의 공수작전과 멀고 먼 다리 영화 '머나먼 다리'

머나먼 다리 (A Bridge Too Far)

감독 : 리차드 어텐보로
출연 : 더크 보거드, 제임스 칸, 마이클 케인, 숀 코넬리, 진 핵크만, 안소니 홉킨스, 로버트 레드포드
개봉 : 1977년 12월 16일


(위 사진) 영화 머나먼 다리는 지상 최대의 작전의 원작자이기도 한 코넬리어수 라이언의 원작을 바탕으로 대규모 인력과 군장비및 항공기를 동원하여 당시 작전을 영화화하였다

마켓 가든 작전을 영화로 만나다

영화 머나먼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연합군이 전격 실행한 마켓 가든 작전과 작전 당시 발생한 막대한 희생을 그린 전쟁영화이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린 대작 전쟁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의 원작자이기도 한 코넬리어수 라이언의 원작을 바탕으로 대규모 인력과 군장비 및 항공기를 동원하여 당시 작전을 영화화하였으며 3시간의 러닝 타임에 달하는 대작으로 영육군 제1공수사단장으로 출연한 숀 코넬리를 비롯 제임스 칸, 라이언 오닐, 로버트 레드포드, 로렌스 올리비에, 마이클 케인, 에드워드 폭스, 엘리어트 굴드, 진 해크만, 맥시밀리언 쉘, 리브 울만, 던홈 엘리어트, 안소니 홉킨스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마켓 가든 작전에 참가한 연합군 지휘관들로 출연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상 최대의 캐스팅이고 혹은 미친 캐스팅)
하지만 복잡한 마켓 가든 작전이나 당시 상황에 지식이 없이는, 수많은 등장인물과 각지에서 벌어지는 전투장면 등이 산만하게 보이는 등 극적 전개와 이해 부족으로 흥미가 반감될 수 있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사전 정보를 갖고 관람하는 편이 좋을 듯싶다.
이 영화는 나바론 요새와 함께 1977년 연말에 국내 개봉되었는데, 당시 개봉명은 멀고 먼 다리였고, 머나먼 다리로 1989년에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이 제목은 영화 마지막 대사에 등장한다.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 돌아와 유감을 표하는 숀 코넬리에게 이번 작전을 지휘한 브라우닝 장군이 이렇게 말한다. “알다시피 우린 먼 다리까지 가려 했소”



(위 사진) 마켓 가든 작전계획의 주요 골자는 네덜란드 아인트 호벤에서 시작하여 네이메겐을 거쳐 아른헴 북쪽 교두보에 이르는 축선상의 요지에 공수부대를 낙하시키고 지상에서 진격하는 보병부대가 이들을 차례로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사상 최대의 공수 작전 마켓 가든 작전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이후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의 진격은 순풍에 돛단배 격이었다. 코브라, 럭키 스트라이크 등 거창한 명칭을 붙이고 이름값에 걸맞은 대담한 작전을 전개하면서 연일 전과를 올렸다. 8월 15일 연합군은 프랑스 남부해안에서 또 하나의 상륙작전을 실시했다. 이리하여 중앙과 양측방으로부터 압박을 받게 된 독일군은 곳곳에서 와해되었다. 8월 25일 연합군은 파리를 해방시켰다. 프랑스 인들은 4년 2개월의 나치 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프랑스 탈환 목적의 오버로드 작전은 계획보다 10일 빨리 완료되었다. 예상보다 순조로운 진격이 이루어지자, 연합군은 제2단계 작전계획을 수정했다. 본래는 센 강선에서 정군하여 재편성 및 재충전을 기하려 했는데 그것을 취소하고 독일국경선을 향해 진격하기로 했다. 결국 1944년 9월 10일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과 몽고메리 장군간의 회담에서 마켓 가든 작전의 구상이 시작된다.

작전명 마켓 가든으로 정해진 이 작전은 공수작전과 지상작전을 연결시켜 적에 대한 수직포위를 하는 대담한 작전이었다. 마켓 가든 작전에서 마켓(Market)은 연합군의 공수사단(미육군 제82공수사단, 101공수사단, 영육군 제1공수사단)을 가든(Garden)은 독일 본토로 진격할 지상군(영육군 제30군단)을 뜻한다. 계획의 주요 골자는 네덜란드 아인트 호벤에서 시작하여 네이메겐을 거쳐 아른헴 북쪽 교두보에 이르는 축선상의 요지에 공수부대를 낙하시키고 지상에서 진격하는 보병부대가 이들을 차례로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회의적 의견도 있었으나 당시 퇴각 중인 독일군의 장및빛 낙관론에 따라 3만 5천명여명 이상의 공수부대와 약 4000대의 수송기, 1500대 이상의 전투기 및 영육군 제30군단의 병력과 2만대의 전차 및 장갑차 그리고 기타차량 등이 동원되었다. 영화에서 하늘을 뒤덮은 연합군의 수송기를 보며 아른헴의 독일군 비트리히 장군이 이렇게 말한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한 번 만이라도 내게 저만한 병력이 있어 봤으면.”

(위 사진) 1944년 9월 17일, 연합군 제1공수군 예하 영육군 제1공수사단, 미육군 제82, 101공수사단의 3만 5000여 병력이 네덜란드 에인트 호벤에서 아른헴에 이르는 지역에 강하하면서 작전이 시작됐다.

(위 사진) 마켓 가든 작전에는 영육군 제30군단의 병력과 2만대의 전차 및 장갑차 그리고 기타차량 등이 동원되었다

아른헴 전투 - 붉은 악마들의 무덤이 되다

1944년 9월 17일, 연합군 제1공수군 예하 영육군 제1공수사단, 미육군 제82, 101공수사단의 3만 5000여 병력이 네덜란드 에인트 호벤에서 아른헴에 이르는 지역에 강하하면서 작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초반부터 예기치 않은 여러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또한 작전 초기 연합군에서 파악한 네덜란드 주둔 독일군 전력이 예상을 깨고 막강했다. 당초 2선급 부대로 예상했으나 독일군 최정예 제2친위대 기갑군단 예하의 제9기갑사단과 국방군 소속 제10장갑사단이 네덜란드에 주둔 중이었다. 미육군 제101공수사단 지역에서는 독일군이 교량 하나를 폭파시켜 지상군의 진격을 지원시켰고, 제82공수사단은 강한 저항에 부딪쳐 네이메겐의 교량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깊숙이 아른헴에 투입된 영육군 1공수사단(3개 여단과 폴란드 제1공수여단)은 사단 주력이 독일군에 차단된 채 프로스트 중령이 이끄는 1개 대대만이 아른헴 교량에 도착하지만, 미육군의 제82, 101 공수부대원들과 힘들게 합류한 영육군 제30 군단이 독일군의 공격으로 더 이상 아른헴으로 진격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면서 영육군의 제1공수사단은 적진에 포위당하고 만다. 프로스트의 대대는 탄약과 식량이 떨어져서도 81시간이나 버텼으나, 영육군 제30군단의 전차들이 아른헴을 10km 남겨둔 작전개시 5일째인 9월 21일 새벽 5시에 항복하고 말았다. 고전 중인 영육군 제1공수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로 폴란드 제1공수여단이 적진 한가운데에 용감히 투하되어 하루 만에 전부대원의 대부분을 잃고 영육군 제1공수사단과 합류한다. 영화에서 폴란드 제1공수여단을 이끄는 진 핵크만이 낙하산 투하하면서 이렇게 외친다. “몽고메리 장군을 용서하소서.”결국 영육군 제1공수사단은, 영육군 제30군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9월 24일 전달된 작전중단, 전원철수 명령에 따라 9월 25일 밤 야음을 틈타 강을 건너 후퇴한다.

지나치게 승리를 확신한 영국군 주도의 이 작전은 결국 참혹한 패배로 끝난다. 몽고메리 장군의 지나친 공명심과 패튼에 대한 경쟁심이 전승분위기의 낙관론과 맞물려 진행된 이 작전은 80km의 진격과 병력 손실뿐 전황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작전이 종료된 9월 25일까지 투하됐던 영, 미 공수부대의 병력손실은 1만 7000여 명에 달했고 특유의 용맹성으로 붉은 악마라 불리던 영육군 제1공수사단은 총병력 1만 5천명가운데 2천 163명만이 살아 돌아왔다. 머나먼 다리라고 불린 아른헴의 교량 하나를 장악하지 못해 마켓 가든 작전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으며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까지 이어지며 많은 희생자를 낼 수 밖에 없었다.


(위 사진) 프로스트의 대대는 탄약과 식량이 떨어져서도 81시간이나 버텼으나, 영육군 제30군단의 전차들이 아른헴을 10km 남겨둔 작전개시 5일째인 9월 21일 새벽 5시에 항복하고 말았다

(위 사진) 머나먼 다리라고 불린 아른헴의 교량 하나를 장악하지 못해 마켓 가든 작전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으며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까지 이어지며 많은 희생자를 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