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든든하軍/현장취재 365

전쟁의 판도를 바꾼 통쾌한 전투, 화령장지구전투

국방부와 육군본부는 오는 9월 6일, 경상북도 상주시 북천시민공원과 상주시 일대에서 6‧25전쟁 ‘화령장지구 전투 전승기념행사’를 개최했습니다.


국방부가 주최하고 육군본부(50사단)와 상주시가 공동 주관하여 당시의 승리를 기념하고 참전용사의 헌신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자리로 호국정신 계승과 국민의 안보의식을 향상시키는데 목적으로 실시한 이번 전승행사는 당시 화령장 전투에 직접 참가했던 참전용사, 6‧25전쟁 참전유공자회, 보훈단체, 일반시민, 학생 등 4,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각종 시범․공연․전시, 체험행사와 시가행진으로 다채롭게 펼쳐졌습니다.


‘화령장지구 전투’는 1950년 7월 17일 ~ 21일까지 경북 상주시 화령장 지역에서 국군 17연대가 북한군 15사단을 격멸하여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전쟁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역사적인 전투로서 ‘상곡리전투’와 ‘동관리전투’를 통칭하고 있습니다.

 

행사 전날인 9월 5일 오후에는 50사단 상주대대 장병과 상주지회 참전용사, 화령중고등학교 학생‧교사 200여명이 참가하여 ‘화령장지구전투 상기 걷기대회’를 실시하고 상주문화회관에서 50사단과 상주시민이 함께하는 ‘나라사랑 콘서트’를 열어 행사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9월 6일에는 전투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50사단장을 비롯한 각급 기관장, 참전용사들이 화령장지구 전투현장인 송계분교를 참배했습니다.

 

 

송계분교는 전투가 일어났던 지역으로 교정의 고목(古木)에는 그 날의 전투를 생생히 기억하게 하는 ‘총알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으며, 상주시는 송계분교에 호국정신 함양 및 여가의 기회를 제공하는 ‘화령장전투 전승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 식전행사 국방부의장대 시범

 

 

 

▲ 식전행사중 육군군악대가 육군 뉴미디어 홍보팀에서 제작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던 밀리미터 젠틀병을 공연하고 있습니다.

 

 

▲ 식전행사 모듬북공연

 

 

 

▲ 식전행사 특공무술시범

 

 

 


이어서 본 행사에는 상주시 북천시민공원에서 실시하며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 각급 기관장과 상주시민‧학생, 보훈단체가 참석한 가운데 2작전사령관이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무공훈장을 수여하고, 50사단 군악대의 연주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6·25노래와 낙동강아 잘있거라등을 합창했습니다.

 

 ▲ 묵념을 하고 있는영웅들, 화령장지구 전투에 직접 참가했던 참전용사들 입니다.


 

▲ 무공훈장수여

 

 

 

 

 

 

 

행사와 병행하여 북천시민공원에서는 각종 이벤트·체험마당이 설치되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참가자들에게 볼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가장 인기를 끌었던 코너인 군데리아 먹거리장터는 긴 대기줄이 끊이질 않아 육군장병들이 군데리아를 만드느라  정말 열심이었습니다.

 

 

 

또한,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실시된 식후행사로 실시되는 시가행진은 상주시민공원 옆 북천교에서 상주여중까지 2km 구간에서 실시하는데 군악대, 의장대를 선두로 기수단, 지휘차량, 화령장전투 참전용사 무개차량과 K-1 전차, K-9 자주포가 뒤를 따르며, 이어서 특전예비군, 여성예비군, 보훈단체․시민 등 1,100여명이 함께 행진하며 민관군이 하나되어 호국정신을 계승했습니다.

 

 

육군 헌병사이드카와 육군군악대를 선두로 시작된 시가행진에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거리에 나온 많은 상주시민들이 함께하며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이번 전승행사가 화령장지구 전투의 중요성과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와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된 전승행사였습니다.

 

 

화령장전승의 신화, 육군이 이어가겠습니다.

 

■ 화령장지구 전투 약사


1.개  요
   전투기간 : 1950. 7. 17 ~ 21
   전투지역 : 경북 상주시 화서면 화령장
   참가부대 : 국군(보병 제17연대), 적군(보병 15사단)


2. 경  과


- 1950년 6월 25일 불법 기습남침 이후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북한군은 국군의 방어선을 와해시키기 위해 적 15사단을 대구방향으로 긴급 투입했다. 이는 대구에서 부산까지 신속히 진격하여 남한을 조기에 점령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북한의 주력부대 1개 사단을 투입한 것이다.

- 북한의 의도를 알아차린 우리 국군은 북한군 15사단을 저지하기 위해 17연대를 상주 북방으로 투입하였다.

- 17연대는 도착한 적 15사단 48연대 이동에 대한 첩보를 획득하여 매복 기습작전을 준비하였다.

-  지금의 송계분교 일대에 도착한 적 48연대가 낮잠을 자거나 목욕을 하는 등 전장군기가 문란한 것을 확인한 1대대장은 경계도 없이 식사를 위해 집결한 북한군 48연대를 기습공격하여 국군의 피해는 없이 적 1개 연대를 전멸시켰다.

- 다음날 2대대가 정찰하던 중 북한군 전령을 생포하여 적 15사단 49연대가 후속하고 있다는 첩보를 획득하였다. 이에 따라 2대대가 동관리 계곡 일대에서 매복을 하였고, 적이 바로 눈앞에 올 때까지 철저하게 사격군기를 유지한 가운데 완벽한 매복작전을 펼쳐 적의 49연대를 잇달아 격멸시켰다.

3. 결과 및 평가


 - 5일간의 전투로 북한군 1개 사단이 격멸되었지만, 아군 전사자는 4명에 불과하였다. 당시 전투를 지켜본 美 군사고문관 스카레기 소령은 “1․2차 세계대전을 다 겪어보았지만 이처럼 통쾌한 전투는 처음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아군은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 수적으로나 화력 면에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아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유리한 계곡지형을 잘 이용하였고, 무엇보다 적이 눈앞에 다가오는 긴박한 순간에도 지휘관의 사격통제에 따르며 철저하게 전장군기를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 또한 화령장전투의 승리는 민관군이 힘을 합쳐 이뤄낸 값진 승리였다. 북한군의 이동을 신고한 노인, 북한군에 대한 첩보를 제공해준 경찰, 연일 계속된 전투에 지친 장병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준 마을 주민, 지리를 잘 알고 있어 주변정찰에 직접 동행하며 도움을 주었던 청년, 이들 모두가 화령장 전투 승리의 주역들이었다.

- 아군은 이 전투의 승리로 낙동강 방어선 구축을 위한 결정적인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17연대 전 장병은 1계급 특진하는 영예를 얻었다.

 

<글 /사진 임영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