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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을 기억 못하는 남친, 왜 그럴까?

둘 사이엔 "우리 이만큼 함께 걸어왔어요."라는 표시를 하는 기념일.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기념일'은 '갈등'이라는 친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주고 받는 선물의 가격이 문제 되는 경우도 있고, 이쪽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상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다.

물론,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것은 '기념일'인 것 자체를 잊었을 때 발생한다. 상대가 남 얘기 하듯 "벌써 그렇게 되었나?" 라고 말하는 순간, 숨도 안 쉬고 100m 달리기를 1등으로 들어왔더니 "아, 시간을 안 쟀네." 라는 말을 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데미지를 입게 된다.

곰신들이 보내오는 사연에도 날짜에 무감각하고, 기념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군화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물증(응?)을 근거로 "마음이 식은 거겠죠?" 라거나, "저희 커플도 권태기가 온 건가요?" 라는 질문을 하는 곰신들이 있기에, 오늘은 '기념일을 기억 못하는 남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내 남자 머리속의 지우개


남자들 중에도 계획하고, 메모하고 자신의 스케쥴을 업데이트 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를 포함해 내가 아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날짜'에 그닥 민감하지 않다. 커플들이 자주 싸우게 되는 이유인 "나중에 전화할게"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남자들 사이에서 "나중에 전화할게." 라는 것은 '몇 시간 후'라거나 '오늘 내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나중에' 전화한단 얘기다. 그건 내일이 될 수도 있고 모레가 될 수도 있고 심한 경우 '언젠가'가 될 수도 있다.

혹시 자기 부모님의 생일을 남자친구에게 말해준 적 있는 사람이라면 확인차 다시 물어보길 바란다. 기억하고 있는 남친이 있다면 그 남자는 '머리속의 지우개' 혐의를 벗겨 주겠다. 기억을 못한다면 더 볼 것도 없이 우리 '머리속의 지우개'클럽에 가입된 회원인 것이다.

남녀의 차이를 설명하는 이론 중 '공간지각능력'을 설명할 때, 남자는 원시시대 부터 사냥감의 속도, 움직임, 거리를 측정하고 사냥감을 잡으려면 얼마나 빨리 움직여야 하는 지, 그리고 돌이나 창으로 사냥감을 잡을 때 얼마나 힘을 들여야 하는 지를 파악했기 때문에 여성보다 '공간지각능력'이 발달했다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에 살짝 기대어 보자면, 남자는 현재 눈 앞에 놓인 사냥감 외에는 다른 것들을 잘 보지 못한다는 단점을 이끌어 낼 수도 있는데 그것이 전화를 받으며 인터넷 서핑을 하는 등의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못하는 것, 그리고 "이따 전화할게"라고 말 해 놓고도 다른 일을 시작하면 그 일을 까맣게 잊어 버리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사냥해서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공간지각능력이 떨어져도 좋으니, 제발 기념일을 잊어 "내가 왜 화났는 지 몰라?" 이 말을 듣고 싶지 않지만,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또 잊고 마는 것. 본능적인 부분도 관여하고 있으니 무거운 형량만은 좀 면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2. 군인이라는 특수성


사회에 있으면 핸드폰 알람을 맞춰놓고, 달력에도 적어두는 등의 노력으로 기념일을 기억하기가 좀 더 수월하겠지만, 군대라는 공간에 있을 때엔 개인적인 기념일을 소대 달력에 적어 놓기도 힘들 뿐더러 훈련이 껴 있거나 부대내 상황이 좋지 않으면 전화도 하기가 힘들다.

내가 부대에 있을 때, 여자친구가 기념일에 맞춰 휴가를 나오라고 하는 까닭에 고민이 많은 후임이 있었는데 군대에서 '휴가'란 원하는 날짜를 기록해 승인을 받으면 나올 수 있는 제도지만, 말 못할 애로사항들도 많이 존재한다. 그 예로, 대부분의 군인들은 크리스마스에 외박을 나가거나 휴가를 가고 싶어하는 데, 모든 군인들이 그 시기에 휴가나 외박을 간다면 부대에 누가 남아있겠는 가. 내가 있던 부대에서는 한 소대 30명 중에 많아야 5명 정도만 나가도록 허락해 준 적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휴가를 올리고 싶은 사람이 올린 뒤 간부의 평가로 조정하게 되는 것이지만,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곰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미국여행을 보내준다는데 3명만 뽑게 되었다. 곰신은 평사원이고 그 여행에는 사장님, 부장님, 차장님이 지원했다. 같은 부서의 과장님도 눈치를 보느라 여행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곰신은 지원할 수 있겠는가? 눈 딱감고 지원할 수는 있겠지만, 4박 5일 후에 찾아올 후폭풍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곰신이 선정되고 부장님이 떨어졌는데, 4박 5일간 여행을 다녀오면 부장님이 "잘 다녀왔어? 재미있었어?" 라며 반겨주진 않을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런 특수성은 좀 이해해주자.

"정말 마음이 있었다면 다 감안하고서라도 나올 수 있는 거잖아요."

곰신의 욕심이 남친의 군생활을 힘들어지게 할 수 있다.


3. 포기하지 말자


위의 글만 읽다 보면 "남자는 이러이러하니까 좀 이해해 주세요. 또, 군인이니까 이해해 주세요." 이런 뉘앙스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절대 그런 의미로 이야기 한 것은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남자친구가 기념일을 잊더라도 여자친구로 하여금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라고 생각할 만한 표현을 하지 않은 것이며, 그 부족한 표현에 기념일을 잊는 사건이 더해지며 갈등에 불을 붙였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갈등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하나, 라는 '현명한 해결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념일을 앞두고 있다면 어느정도 남자친구가 알 수 있도록 '힌트'를 주기 바란다. 공지를 해주면 속된 말로 엎드려 절받는 느낌이 들 지 모르지만 차라리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까지 해가며 "나더러 더 뭘 어쩌라구."로 결론 나는 싸움보다는 낫다.

기념일 며칠 전 부터 '기억 하나 못 하나 지켜보겠어.' 라는 마음가짐도 갖지 말길 바란다. 서로 싸우지 못해 안달난 커플이 아니라면 답을 혼자서만 알고 맞추나 못 맞추나 시험하는 일은 하지 말자. 함께 걸어온 날을 축복해도 모자란데 왜 빨간펜을 들고 달려드는가. 말하지 않아도 기억하고 소중히 생각해 주는 남자친구를 원한다면 그렇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못 했다고 갈구기 보다 가르쳐주잔 얘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기하지 말자. 사귄 기간이 오래되고 여러번의 기념일을 보내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려니' 하며 넘어간단 얘기다. 당신이 실망해서 '에휴, 뭘 기대하겠어..'라는 생각으로 포기해 버리면, 상대는 '아, 이해해 주는 거구나.'라고 받아들일 위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기념일을 챙기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하는 입장인데, 거한 선물을 주고 받거나 늘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더라도 서로에게 곁에 있어주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평소 잘 하지 않게 되는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는 것, 그게 커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 이라 생각한다.


남자에 대한 힌트를 하나 적자면, 남자는 "내 친구는 2주년 기념으로 제주도 갔다 왔데." 라고 말해봐야 친구의 남자친구라는 사람에게 적대감밖에 못 느낀다. 그냥 친구네 커플 얘기를 한 건데 왜 그리 화를 내냐고 의아하게 생각하지 말고 되도록 다른 커플이나 다른 남자사람과 비교하지 말길 바란다.

이런 남자도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해바라기'로 만들 수 있으니, 그건 바로 남자가 작은 감동만 줘도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는 것이다. 같이 거리를 걷다 핸드백만 들어줘도. "넌 정말 날 위해서 뭐든 다 해 주는 것 같아. 행복해." 이런 오버를 보여주는 거다. 그럼 앞으로 칭찬을 듣고 싶어서 더 극성스럽게 매너를 보여주는 것이 남자다. 당신이 그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 만큼, 그를 알아주는 것이 이 문제 해결의 '마스터 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