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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의 추억

때는 바야흐로 05년 무더운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 일병이었다. 사실 군대에서 일병이야말로 진정한 핵심전력이 아닐까싶다. 모든일에 솔선수범하여 누구보다도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며 임한다. 교육훈련을 할때에도, 작업을 할때에도 언제나 최선봉에는 일병들이 포진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 아침, 행보관님은 중대사열대에 중대원들을 모아놓고 작업을 지시하였다.

'오늘은 대대탄약고 제초작업 및 배수로 정비, 순찰로 외벽 보수를 해야된다. 각 소대 선임분대장들은 나와서 짱께칠 수 있도록~!'

여기서 짱께는 가위바위보를 뜻한다. 정확한 어원은 중국어의 '란, 쩡, 펑'에서 나온 것으로 '란 쩡 펑'이란 발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짱 껨 뽀'가 되었고 다시 우리들은 흔히 줄여서 짱께라고 하였다. 아마 많은 군인들이 짱께라고 사용하고 있기에 표준어는 아니지만 짱께라고 칭하겠다. 웅성웅성~!

 소대마다 무슨 작업이 제일 쉬운걸까?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무난한건 제초작업인데, 늘 하던 거잖아~!'

 '맞습니다~! 왠지 외벽 보수하는게 제일 빡셀거 같은데 말입니다~! 일단 무너져 있습니다~!'

 '배수로 정비도 딱히 할게 없을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순찰로 외벽 보수만 아니면 된다는 일념하에 선임분대장을 응원하였다~! 제발~! 제발~!

 가위 바위 보~!

저건 분대장 짬밥먹고 가위바위보도 못하냐~! 우리 소대는 단박에 졌다. 아니나 다를까~! 외벽 보수 작업을 맡게 되었다. 마음같아선 분대장 손모가지를 분지르고 싶었지만, 연신 해맑게 웃으며 장비를 챙기러 창고로 뛰어갔다.

 그리고 소대원들은 연신, 돌과 나무를 나르고, 두들기고, 자르며 작업을 하였다. 얼마나 했을까? 한낮의 더위는 가히 폭염수준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뛰어다니며 작업을 하다보니 다들 금방 녹초가 되었다. 이에 분대장은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자고 하였다. 나무 그늘에 앉아서 담배를 한대 물고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우와~! 오늘 진짜 덥지 말입니다?'

 '그르게~! 우리 아이스크림이나 먹을까?'

 '와우~! 좋지 말입니다~! 분대장님이 쏘시는 겁니까?'

 '야~! 물론 내가 사줄수도 있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짱께를 해야지~! 콜?'

 '아 ㅋㅋㅋ 좋습니다~! 코오올~!

 '좋아~! 아이스크림 짱께할 사람 다 모여~!'

 헐... 평소 같으면 이등병들은 얌전히 구경만 할텐데, 오늘은 참을 수가 없나보다. 한참 눈치를 살피던 이등병 왕고가 오기 시작하더니 곧, 줄줄이 다 붙었다. 물론 나머지 소대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때 휴가자, 근무자, 파견자등을 제외하고 대략 20명 내외가 있었다. 사실 이런 내기는 내무부조리라고 부대에서 금지시켰다. 그러나 그렇다고 안할 군인들인가? 그래도 이등병이 걸리면 왠지 안좋게 보일거 같으니 이등병은 그냥 사주기로 하고 제외시켰다.

 당시 나의 월급은 대략 4만원이 채 안되었다. 그것도 월말이라 2만원도 채 안남아있었다. 콘 아이스크림가격은 PX가로 600,700원 하였다. 고로 걸리면 끝장이다~!

 

'야야~! 이건 자의로 하는거야~! 안할 사람은 지금 빠져도된다~!'

 '하하~! 당연하지 말입니다~! 일단 너무 많으니깐 빼기로 하지말입니다~!'

 '좋다~! 일단 10명이하까지 남기자~!

 여기서 빼기란 인원수가 많을때, 주로 하는 방법으로 각자 가위바위보를 낸다. 이때 자신이 낸 모양과 같은 사람들끼리 모인다. 그리고 그 수가 가장 적은 사람들은 살아남는다.

 가위 바위 보~!

 '주먹 주먹~! 가위 가위 모여~!'

 '와아아아~! 오예~!'

 하나둘씩 구제받아서 살아나간다. 연거푸 3번 지더니 결국 나는 살아남지 못하였다. 남은 수은 8명~! 이제부터 가위바위보의 진검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가위 바위 보~!

 맙소사~! 한방에 나랑 분대장만 남았다. 사실 가위바위보는 자신감이 매우 중요한 게임이다. 지금의 상태는 자신감 제로이다. 일단 자금의 압박으로 인해 시작부터 주눅이 든 상태였다. 이러다간 완전 물리겠다. 정신차려야돼~!

 '하하~! 사나이는 주먹이다~! 나 주먹될꺼다~!'


아~! 제발 그런 말좀 하지마~! 나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계산하기 시작하였다. 주먹을 내면, 나를 보자기를 낼건데, 만약 그걸 노린거면 가위로 나올테고, 그럼 난 다시 주먹을 내야되는건가? 아 불안해 불안해~!

 가위 바위 보~!

 ●________  GAME OVER~! 맙소사~! 졌다~! 어흐흐흑흐구ㅜ

 벌써 분대장은 분대 후임을 시켜 관물대에서 내 지갑을 가져오라고 난리다. 아나 사악한놈~! 아직 월급날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이제 난 뭐먹고 살지? 근무갔다와서 라면도 못먹는건가?

 곧 애들이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왔고, 다들 맛있게 먹었다. 그래 이렇게 된거 어쩔 수 없지~! 라고 세뇌하면서 먹었다. 이건 정말 비싼 아이스크림이구나~!

 그날밤, 불침번근무를 마치고. 평소 같으면 라면을 가지고 맛있게 먹을텐데, 이미 거덜난 나는 라면을 준비할 수 없었다. 장구류를 정리하면서 힘없이 매트리스에 누울려고 하였다. 하지만 배는 너무 고팠다. 아~ 다시 훈련병때로 돌아간 거 같아~! ㅜㅜ

 '가츠야~! 형 관물대에 짜파게티랑 스파게티랑 짬봉면이랑 다 있다. 먹고 싶은거 골라 먹어~!'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분대장이 그윽하게 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헐~! 저 인간, 오늘따라 왜케 멋있지? 나는 나오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분대장 관물대에서 짬뽕면을 꺼내들고는 행정반으로 뛰어갔다.

 나는 감동의 라면을 먹으면서 다시는 결코 가위바위보에서 지지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