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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하軍/생생! 병영탐구

육군사관학교를 가다 下편


"눈 감아!"




저녁을 먹고, 생도대 생활관으로 도착하니, 날카로운 선배생도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복도를 울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 준 그들이 180도 변한 것이다. 이제부터 예비생도들의 앞 날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자유롭게 취재를 하던 나도, 괜시리 조심스러워졌다. 이미 현역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이 과정을 모두 다 잘 알고 있었지만,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예비생도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상황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다고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면 혼미해질 뿐이다.




"우리 선배님이 달라졌어요!"

그랬다. 앞으로 5주간 그들의 훈육조교가 되어줄 선배생도들이 무시무시한 아수라로 변한 것이다. 물론, 나의 눈에 비친 선배 생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맡기 싫은 악역은 맡게 된 배우였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되는 역할이다.

아직 관등성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군기라고는 전혀 들지 않은 그들이기에, 더욱 더 필요한 부분이다. 이어서 그들은 더이상 사제복을 입지 못한다. 선배 생도들은 신속하게 환복을 지시하였다.




"동작봐라! 지금 캠프왔어!"

"아닙니다!"

"어쭈! 목소리 그 것 밖에 안나오냐?"

"아닙니다아!"




"뭐가 문제인가?"

"네? 없는데 아니.. 없습니다아!"

"관등성명하는 거 모르나?"

"아닙니다아!"




'제발 나한테 오지마!"

한동안, 생활관 복도는 전쟁터를 방굴케 하였다. 그제서야 이 곳이 군대임을 새삼 깨달게 되었다. 사실 취재를 하면서도 너무 프리한 거 같아서, 내심 놀랐다. 요즘 군대가 아무리 좋아졌다고 하지만, 이정도였나 싶었는데 말이다.

지금 이 시간이 예비생도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시간이겠지만, 이 모든 과정을 꿋꿋하게 버텨내야지만 장차 대한민국을 호령할 수 있는 멋진 장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생하지 않고, 순탄하게 장교가 된다면,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고, 유사 시 무슨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어느덧 그들의 주먹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더 이상 나약한 정신과 육체로는 이 곳에서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것이다.

"와우 장난 아냐!"

그들이 떠난 빈 자리에는 주인 잃은 소지품만 덩그라니 놓여져 있었다. 예비 생도들은 자리를 이동하여 본격적으로 보급품을 지급받았다.

전투복, 전투화, 전투모 등 지금까지 한번도 입어 본 경험이 없지만, 이제는 수십년을 함께 해야할 옷이다. 군복에 새겨진 주기와 계급, 소속 비표가 그들의 삶을 대변해 줄 것이다. 그들도 이 순간만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나의 분신이야!"


그렇게 첫날밤이 깊어만 갔다. 다음날, 오전 다시 생도대로 돌아오니, 예비 생도들은 아침일찍 육사병원으로 가서 각종 검사를 받고 있었다. 강한 정신도 중요하지만, 이전에 강한 육체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하루사이 군기가 바짝 들어있어!"

대기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어제와 딴판이었다. 어제, 이발소에서 이발을 할 때만 하여도, 모두 편한 자세로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오늘은 모두 각을 잡고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군기 하나만큼은 최고였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점심식사도 결코 편하게 먹을 수 없다. 5주간의 기초훈련기간 동안에는 생도가 되기 위해 모든 교육을 끝마쳐야 하기 때문에 단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추억도 떠올랐다. 몇해 전 겨울, 훈련병이었던, 나는 동기들과 함께 수십도 영하의 날씨 속에서 밥 한 끼 먹기 위해, 열심히 뒹굴고, 목청껏 군가를 불려제꼈다. 언제나 조교들은 가장 큰 목소리로 부르는 조를 취사장 안으로 입장시켜 주었다.

"3소대 입장!"

"입자아앙!"




그 때는 정말 몰랐다. 나중에 자연스레 알게 되었지만, 조교 입장에서는 철저하게 순서에 맞춰서 평등하게 입장시켜주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조교는 완벽한 복장을 갖추기 위해, 흔한 귀도리, 목도리도 하지 않은 채, 우리와 함께 서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알고보면 가르치는 사람이 더 힘든 법이야!"




우리 예비생도들도 이런 선배생도들의 마음과 고충을 이해하고, 힘든 훈련과정일지라도 마음만큼은 따뜻하고 즐겁게 생활하였으면 좋겠다. 함께 하는 동기들과 선배들이 있기에 결코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예비생도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지금은 아직 서먹서먹한 동기들이지만, 평생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입학식 때, 더욱 건강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며, 아자 아자 파이팅!


posted by 악랄가츠(http://realo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