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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잡는 가츠




동원 훈련이 끝나고 내 생애 가장 무더웠던 여름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훈련 복이 터진 우리 대대는 대대 단위로는 전군 최초로 육군 과학화훈련장으로 KCTC라는 생소한 훈련을 떠나게 되었다. 전군 최초라니! 시작부터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육군 과학화훈련장은 강원도 인제 부근에 위치한 최첨단 서바이벌 훈련장으로서 KCTC 훈련에 참가하는 부대는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대항군 부대와 전투를 벌인다. 얼마나 최첨단이냐 하면, 우리가 소지한 모든 무기와 장비뿐만 아니라 머리와 가슴 등 신체 곳곳에도 첨단 센서를 부착한다. 왼쪽 어깨 부분에는 소형 모니터가 부착되어 있는데 현재 내 신체 상태와 무기, 화생방상황, 적 포격상황 등이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또한 일체의 열외병력이 없이 대대장과 주임원사조차도 센서를 부착하며, 실시간으로 중앙통제실로 위치정보와 이동속도, 일어서 있는지 엎드려 있는지까지 보고된다. 내가 누구를 쏘았는지 어떤 무기에 내가 맞았는지도 알 수 있다. 정말 환상적이지 않은가? 대충 짱박혀 있다 시간 되면 끝나는 ‘했다 치고’ 식 훈련이 아니라 진짜 전투를 한다는 말이다.
훈련을 앞두고 병사들 사이에선 무수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야 가츠, 그거 들었냐? 이번에 우리랑 붙는 전문 대항군이 살아있는 전투머신이래! 특전사랑 붙었는데 그냥 녹여버렸대요.”
HID 얘기까지 나오면서, 그들은 직접 마주치기도 전에 이미 우리 대대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가끔은 대항군들에게 다구리를 당하는 악몽을 꾸기도 하면서 우리는 한 달간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8월초, 드디어 출전의 날이 밝았다. 화천에서 인제까지는 육공 트럭을 타고 고속도로로 이동했다. 그러고 보니 훈련 나가면서 차타고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너무 행복했다. 비록 그곳이 지옥이라 해도 차를 타고 가는 기분은 상쾌하기 짝이 없었다. 이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무더위 속에 훈련 입소식을 치르게 되었다. 우리의 화기에는 레이저발사기가 장착되어 있었고 몸에는 약 10킬로그램 가량의 센서가 부착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K-2 소총을 소지했는데 한 달 고참인 심일병은 K-201 유탄발사기를 들고 있었다. 다행히 소총에 부착된 레이저발사기는 그나마 가벼운 편이었는데 K-201의 레이저발사기는 엄청나게 컸다. 총을 세로로 세워놓아도 혼자 서있을 정도였다. 그런 장비를 부착한 유탄발사기로 ‘받을어 총’을 한다는 건 차라리 고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입소식 준비를 하는 동안 화기중대인 8중대 쪽에서 낙오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서스펜스 넘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문제의 우리 대대장 왈,
“야 8중대장!”
“네, 8중대장 대위 아무개!”
“대가리 박아!”

난 그게 꿈인 줄 알았다. 중대장이 군장을 멘 채로 대대원 앞에서, 훈련장 간부와 병사들도 보는 앞에서 머리를 박다니. 순간 우리 대대원들의 뇌리를 동시에 스쳤던 한마디가 코러스로 터져나왔다.
“X됐다!”
그 시점을 전후로 우리 앞에 있는 사람은 대대장이 아니고 북녘의 모 국방위원장 급 포스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힘든 여건에서도 우리 대대원들은 이 세상 어느 군대보다 완벽한 제식으로 입소식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 후로 다시는 그때만한 제식은 볼 기회가 없었다. 입소식이 마무리 될 무렵 대대장은 우리에게 당근도 제시했다. 다음 조건을 만족하면 포상휴가를 주겠다는 것이다.1. 적 지휘관급 사살2. 적 병사 열 명 이상 사살3. 적 탱크 격파

안 그래도 별다른 포상휴가 건수가 없는 소총부대원들에는 구미가 확 당기는 조건이었다. 내 옆에서 무거운 유탄발사기 무게에 짓눌려 낑낑거리던 심일병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내 유탄이 위력을 발휘하겠군. ‘아무나 맞아라’ 샷을 하면 적 지휘관이나 병사들 몇은 맞겠지? 킬킬킬.”
그러나 그 말을 내뱉고 딱 이틀 후 야간공격 때 우리의 심일병은 필살기 ‘아무나 맞아라’ 샷으로 2소대 아군 세 명을 죽이고 개갈굼을 먹었다. 심일병이 사살한 세 명은 모두 그의 고참들이었다. 한없는 묵념, 그리고 애도.....
위의 조건 1, 2번은 총으로 하는 거니까 어찌어찌 될 법도 한데, 일개 소총수가 탱크를 어떻게 격파하냐고? 걱정일랑 관물대에 넣어두시라. 소총소대에도 대전차 화기가 있다. 팬저파우스트(RPG-7)와 로우(M72-law)가 그 해답이다. 우리 중대장은 각 소대에 두 명씩의 대전차화기조를 운용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낙오 일보직전인데 중장비급 화기를 또 들고 다니는 건 자살행위였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결국 K-3 기관총, K-201 유탄발사기 담당 병력을 제외하고 이등병을 빼고 나니 일병 중엔 소총수가 나밖에 없었고 선임병급으로는 박병장(왕고참 박병장은 이미 제대했고, 이제 막 진급한 또 다른 박병장이었다)밖에 없었다.
이윽고 주간방어 작전이 시작되었다. 박병장과 나는 대전차화기조로서 소대와는 별도로 작전을 수행하러 나갔다. 어느덧 전투에 심취한 걸까? 박병장이 달라졌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엄청난 의욕을 보이고 있었다.
“가츠야. 우리 전차 잡고 꼭 포상휴가 나가자. 야야, 더 엎드려! 이 길은 너무 노출되어 있군. 좀 더 산속으로 들어가서 이동하자.”
내가 박병장을 6개월 동안 봐왔지만 정말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팬저는 세 발까지 발사가 가능하고 로우는 한 발밖에 사용 못하므로 각 세 발과 한 발의 레이저탄이 지급되었다. 당연히 팬저가 로우보다 훨씬 크고 무겁다. 박병장은 탱크를 잡겠다는 욕심에 그 무거운 팬저를 집어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어느새 모니터에선 적 포탄이 날아온다는 삐이삐이 소리가 들렸고, 이곳저곳에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박병장과 나는 적 탱크가 출현할 만한 길목 언덕배기에 은신했다. 우리는 전투식량을 까먹으며 아까 부소대장이 알려준 작동법과 유의점을 되새기고 있었다. 대전차화기는 후폭풍이 있으므로 발사할 때 전방과 후방으로 모두 레이저가 나가니 특히 유념하라고 했다. 짱박힌 지 1시간이 지나도 길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가츠야, 나 잘 테니깐 탱크 오면 깨워!”
그렇게 또 1시간이 지났다. 이미 무전기에서는 난리가 났다. 2소대장이 적군에게 죽어서 중대장한테 개갈굼 먹고 있고, 이쪽저쪽에서 아군 피해가 속출했다. 하지만 나와 박병장이 있는 곳은 천하태평 그 자체였다. 따뜻한 여름햇살을 맞으며 슬슬 졸음이 밀려올 무렵,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곧 땅바닥까지 흔들렸다.
크르릉 크르릉
저 멀리서 뽀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전차들이 위풍당당하게 진격해오고 있었다. 잽싸게 박병장을 깨우려고 몸을 돌리는 찰나,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박병장은 이미 팬저에 눈을 갖다 대며 조준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쉽게 볼 수 없는 진정한 병장의 전투력이 아닐까 싶었다. 시야에 포착된 탱크는 세 대, 우리가 가진 탄알은 네 발. 우리 앞으로 포상휴가증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100m, 80m, 60m, 40m...
드디어 사정거리까지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도 조심해야 했다. 첫 발이 발사되는 순간, 우리 위치도 노출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첫 발이 중요하다! 이윽고 박병장의 팬저가 레이저를 내뿜었다. 물론 레이저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적 탱크에 부착된 센스에 명중하면 명중된 부위에 따라 피해상황이 3단계로 나뉜다. 완파, 반파, 기동불가 판정과 동시에 탱크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실제로 폭파되는 것처럼 미리 설치된 연막탄이 터진다.
박병장 회심의 샷이 발사되었지만 탱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빗나간 것이었다. 적 탱크는 즉시 기동을 멈추고 포신을 우리 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박병장이 내게 소리쳤다.
“야, 가츠야! 탄 재장전할 동안 네가 빨리 발사해!”
“넵, 박병장님!”
나는 전방의 탱크를 향해 정조준했다. 이윽고 팡 하는 폭음과 함께 내 로우가 레이저를 뿜었다. 순간 내 등 뒤에서 울리는 삐이삐이 소리. 헉, 그랬다! 내 뒤에서 팬저 탄을 장전하고 있던 박병장이 내가 쏜 로우의 후폭풍에 맞아죽은 것이다. 순간 내 짧은 군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할 말을 잃고 멍하게 있는 내게 박병장은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외쳤다. 
“야 임마! 지금 뭐하는 거야? 빨리 내 팬저 들고 탱크 잡아야지!”
죽는 순간 자신의 무기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군이 전사자의 무기를 재등록하여 다시 사용할 수는 있다. 갑자기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내 실수를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무기로 적군을 잡으라니. 순간 나는 지금 진짜 전쟁터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어가면서까지 후임을 위해 외치는 박병장의 마지막 한마디는 처절했다.
“가츠야, 너라도 꼭 포상 나가야 된다!”
바로 한 달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당시에는 훈련 준비 때문에 대대 전체의 휴가와 외출, 외박이 통제된 상태였고 혹시나 하고 청원휴가를 신청했지만 단박에 잘렸다. 당시 나는 패닉 상태였고, 소대장을 비롯한 전 소대원들이 매우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박병장의 그 한마디가 내 몸을 뜨겁게 달궈주었다.
훈련으로 천근만근이던 몸이 가벼워졌다. 아니 온몸의 신경세포가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십킬로그램이 넘는 팬저를 가볍게 들고 언덕 밑으로 뛰쳐나갔다. 탱크 주변에는 통제관 차량이 와있었고 통제관 완장을 찬 소령이 내렸다.
갑자기 산속에서 뛰쳐나와 탱크를 향해 돌진하는 내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며 내게 질문했다.
“자네 혼자인가?”
나는 눈물을 머금고 선임병은 전사했다고 대답했다. 차마 내가 죽였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어디, 탱크 한번 잡아보시게나.”
내게 유리한 건 그 훈련이 가상 전투라는 점이었다. 실제 전투였다면 탱크가 나를 깔아뭉개버릴 수 있겠지만 이건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또한 전차나 나나 실제 무기가 아니라 레이저로 공격한다는 것이다. 레이저는 나무나 수풀을 통과하지 못한다. 이를 백분 활용하여 최대한 탱크 코앞까지 다가갔다. 수풀을 가운데 두고 탱크와 나는 불과 5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탱크의 엔진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전차장 간부는 내게 협박과 회유를 시도했다. “야이 색히야! 넌 벌써 깔려죽었어. 얼른 나와서 죽어, 임마!”
그는 이렇게 외치며 통제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통제관은 내 편이었다. 아니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건데 통제관도 탱크가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나 보다. 그냥 지그시 미소만 지으며 상황을 관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내심 무섭기도 했다. 이제 한 방 쏘고 죽어라 도망가야 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순간, 수풀을 헤치며 적 탱크를 향해 필살의 한방을 내뿜었다.
쾅!
집채 만한 탱크에서 사이렌이 울리면서 허공을 향해 연막탄이 터졌다.
기동파괴, 기동파괴!
성공이었다. 당황한 전차장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도망만 가면 된다. 뒤만 보고 얼마나 뛰었을까? 언덕 위에서 박병장이 방탄모를 벗고 앉아 내게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정말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될까? 결코 서든이나 카스 게임을 하면서 혼자 적들을 다 바른 기분과는 차원이 틀리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내 어깨에서도 삐이 삐이 소리가 났다. 기동파괴 당한 전차에서도 회심의 포탄을 내게 날린 것이다. 전사자는 방탄모를 벗고 전사자 집합소로 집결해야 한다. 돌아가는 길에 박병장이 말했다.
“독한 색히! 포상 가려고 고참을 죽이냐?”
“일병 가츠! 아닙니다.....”

“휴가 나가서 여친 꼭 붙잡아라. 사진 보니깐 엄청 예쁘던데. 흠, 너한테는 조금 과분하긴 하지만 말야. 이 형이라면 모를까, 크크크.”
“하하하.”
그때는 나도 그냥 실없이 따라 웃고만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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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휴가는 어떻게 되었냐고? 하늘 같은 고참의 전사와 맞바꾼 휴가증인데 쓰지 않는 건 일종의 죄악 아니겠는가? 부대로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대장 이하 전 소대원들의 염려와 격려 속에 짧은 휴가를 나갔다.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고무신을 고쳐 신은 그녀와의 짧은 해후, 그리고 이별을 할 때까지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의 확인을 위한 마무리 수순이었고, 웃는 얼굴로 보내주는 것이 우리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마음을 다지고 나갔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런데 부대로 복귀하는 고속버스를 타기 직전에야 이대로 영영 이별이라는 실감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속의 말은 차마 하지도 못하고 통화는 끝났다. 동서울 터미널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애써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먹통이 된 전화기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짐짓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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