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콘텐츠

사생활, 남자친구와 어디까지 공유해야 할까?

사귀는 사이라면 메일의 비밀번호는 물론, 통장의 비밀번호까지 공유해야 하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며, 상대의 사생활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들여다 볼 수 있어야 안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많은 사건들을 보자. 연예인이건 일반인이건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사생활'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은 다양하며 그 내용 또한 서로에게 치명적이 될 수 있다. 가까운 예로는 미니홈피 비밀글이 불씨가 되어 돌이킬 수 없는 화상을 입은 연인도 있고 말이다.
오늘 매뉴얼에서는 '사생활 공유'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서로를 믿고 존중하는 상태에서 사생활 공유는 작은 기쁨과 공감대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안전장치'라고 생각하는 시점부터, 안전핀이 뽑혔을 때 추후 벌어진 폭발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분도 포함이다.

1. 궁금하면 물어라

사생활을 공유하자는 제의를 받거나 했다면, 그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사랑하게 되면 더 알고 싶고, 그 사람의 생활이 궁금하며 흔히 말하는 의처증이나 의부증에 시달리지 않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가를 알고 싶을 수도 있다. 대인관계나 누구와 주고 받는 메일이 궁금할 수도 있고 말이다. 특히 내 연인의 미니홈피에 계속해서 달리는 비밀글을 보고도 궁금해 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게 오늘도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뜬 눈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지 않겠는가.

당신의 상상이 그를 온갖 형태로 변형시키고 있다면 그 진심을 말하고 비밀번호 공유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의심이 고개를 들고, 불안이 자라난다면 그것은 다른 형태로 둘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이전 매뉴얼을 통해서 둘의 <믿음>을 강조했지만, 당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시점이라면, 더이상 괴로워 하지 말고 물어라. 그것이 색안경을 끼고 상대의 모든 행동을 의심하며 파멸로 들어서는 것 보다는 낫다. 단, 믿음이 깨진 후라면 상대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도 그 의심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상대의 다른 메일 주소가 있지는 않은지, 이미 정리를 한 것은 아닌지, 내가 모르는 또다른 무엇이 있는 건 아닌지 하며 말이다. 비밀번호만 알아낼 것이 아니라 당신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권한다.


2. 첫번째가 되야 한다는 마음은 어리광이다

연애를 오래 했든 적게 했든, 또는 사귄 경험이 많든 적든, 상대에게 내가 첫번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광에 불과하다. 상대의 회식자리에서도 내가 들어오라면 들어와야 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12시를 넘겨서 놀았다고 안달하기 시작한다면 상대는 금방 지치고 말 것이다. 간혹 이런 집착을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집착의 주먹에 앞니가 빠져봐야, "아~~ 내 앞니가 그동안 라면을 잘 끊었구나~~" 할거다.

둘은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 사로 마주보며 포옹을 하더라도 그의 심장은 내 오른쪽에서 뛰고, 내 심장은 왼쪽에서 뛸 것이다. 연애는 합집합이 아니라 교집합니다. 둘의 공통점이 '사랑'이라 한다면, 그 외의 부분은 '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매뉴얼을 통해 강조하는 부분이 바로 이 '사생활'이라는 거다. 군대에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보낸 곰신이나,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는 여자사람, 그 외에 모든 커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생활을 가지라'는 거였다. 당신의 마음이 온전히 그 사람에게만 매달려 있다면, 그의 작은 몸짓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것이고, 말 한마디에도 온갖 의미부여를 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늘 변하는데 그 사소한 변화에도 당신은 불안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늘 강조하지만, 혼자서는 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두 다리로 설 수 있을 때, 서로 등을 맞대고 기댈 수 있는 것이다. 기대는 것이 먼저가 아니란 얘기다. 당신이 먼저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결국 "온전한 사랑"은 마음 다해 그 사람을 사랑하고, 아무 후회 없도록 그 사람만 보는 것이 아니냐반문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로렌스 티르노의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라는 시를 들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새벽 두시, 세 시, 또는 네 시가 넘도록
잠 못 이루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집을 나와 공원으로 간다면,
만일 백 명, 천 명, 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물결처럼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중략)…
그렇게 되면
인류는 더 살기 힘들어질까.
세상은 더 아름다운 곳이 될까.
사람들은 더 멋진 삶을 살게 될까.
아니면 더 외로워질까.
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만일 그들 모두가 공원으로 와서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태양이 다른 날보다 더 찬란해 보일까.
또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그들이 서로를 껴안을까.

-로렌스 티르노, <잠 못 이루는 사람들> 중에서


류시화 시인의 시 제목처럼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라는 마음의 공허는 상대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 근본적인 외로움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달래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평생을 함께해야 할 마음의 티눈 같은 것이니 말이다.


3. 관심인가 간섭인가

20대 초반의 커플들이 가장 많이 겪는 문제는 '연락'에서 비롯된다. 심한경우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기하학적 숫자의 부재중 전화기록을 남겨두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바빠도 답장할 시간이 안돼?" 라거나 "전화 한다고 해 놓고 왜 안했어?" 같은 일이 '불씨'가 될 수 있단 얘기다.

위에서 말했듯, 나와 상대가 '합집합'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마음 같지 않은 상대 때문에 답답하고 화가 나는 것은 나 자신일 뿐이다. 그것을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목소리만 높이거나 차곡차곡 적금처럼 쌓아 두었다가 나중에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터트린다면, 상대는 당신의 본질까지 의심하게 될 위험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이 '간섭'이 되어서는 안된다. 상대는 나와 연인이라는 인연의 끈으로 묶여 있는 것이지, 결코 내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멀로그에 연재중인 <솔로부대탈출매뉴얼>에서도 커플이 될 준비중인 솔로부대 대원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의 특징이다. 곰신생활 매뉴얼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니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자면, 대부분의 남자는 "이따가 전화 할게" 라고 해 놓고 전화를 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이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벗어나기 힘든 특징이다. 게다가 "나중에"라고 말해놓고는 그 약속을 잊기도 한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남자들의 "나중에""언제 술 한잔 하자" 같이 전혀 의미를 두지 않는 먼 미래라는 뜻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거 있어"라는 말은 당신을 무시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당신의 어휘력을 따라갈 수 없는 남자들이 비명처럼 질러대는 대답일 뿐이다. <솔로부대탈출매뉴얼>에서 다뤘던 내용들을 모른 채 연인이 되었다면 사귀며 하나씩 알아갈 수 있겠지만, 평소 궁금하던 점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솔로부대탈출매뉴얼>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서로간의 이해가 없다면 결국 오해로 이어질 것이고, 그 오해는 관심을 간섭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누군가와 사귄다는 것은 그 상대를 소유했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그를, 혹은 그녀를 내 주머니에 넣지 못해 마음쓰며 침몰하는 커플들은 얼마나 많던가.


커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사람의 일이란 당장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다. 지금은 영원을 약속한 사이라고 해도 다음 날 다신 만나기 싫은 존재가 될 수 있고, 이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걸어야지 라는 생각은 시간이 지나 어린 시절 추억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누구를 만날 대 마다 여리고 소심하며 조심조심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사랑을 모두 주어도 좋다. 단, 당신이 나중에 그것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생활 역시 당신이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공유한다면 두 사람의 사랑에 득이 될 수 있겠지만, 욕심을 채우기 위한 안전장치로 생각한다면, 치명적인 독이 될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