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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TC, 그 진정한 가치를 논하다


싸늘한 바람이 뺨을 스치는 11월의 어느 날, 강원도 인제군 남면에 위치한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단(KCTC, Korea Combat Training Center)을 방문했습니다. 부대 약칭인 KCTC로 더 많이 알려진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단은 대한민국 육군 과학화 훈련의 요람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훈련부대입니다.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 네트워크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첨단화된 훈련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자가 직접 확인한 KCTC의 진정한 가치는 첨단화된 훈련 체계도, 무적을 자랑하는 전문대항군(제11보병대대)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KCTC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에서 인제 방향으로 국도를 달리다보면 육군 과학과 전투훈련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인제 방향으로 44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단을 알리는 커다란 이정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지방도로도 고속 및 직선화가 이루어져 쭉쭉 뻗은 왕복 4차로가 인상적입니다. 답답한 서울 도심에서 벗어나 이제는 겨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강원도 지방도로를 달리다 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입니다.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단에 도착하자 단장님께서 반갑게 환영해 주십니다. 훈련 과정을 가감 없이, 정확히 소개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으십니다. 과학화 전투훈련단을 처음 방문하는 기자에게 모든 것이 다 신기하고 놀랍기만 합니다. 취재준비를 단단히 마치고 실제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는 야전으로 이동했습니다.

▶5일차 방어전투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훈련현장


▶최고의 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영상 중계팀과 마일즈 장비 이동점검팀


울퉁불퉁 강원도의 험준한 산길을 달려 훈련 현장에 도착하니 영상 중계팀과 마일즈 장비 이동점검팀의 모습이 보입니다. 영상 중계팀은 비디오 장비를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훈련현장의 영상을 중앙통실에 전송하고 보다 정확한 현장 통제 및 상황 파악을 가능케 합니다. 마일즈 장비 이동점검팀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훈련장비가 최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술적 부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첨단 기술이 우리의 손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화생방 경보가 전파되자 신속히 화생방 보호의를 착용하고 있는 병사들

영상 중계팀과 마일즈 장비 이동점검팀을 지나 좀 더 이동하니 저 멀리에서 철조망을 설치하고 있는 훈련부대의 모습이 보입니다. 관찰통제관의 설명을 들으니 5일차 방어전투 준비가 한참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병사들이 소대장의 지시에 따라 대항군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철조망과 지뢰지대를 열심히 설치하고 있습니다. 순간 화생방 경보가 전파됩니다. 일부 경계병력을 제외하고 모든 병사들이 재빠르게 화생방 보호의를 착용합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여느 훈련과 달리 KCTC에서는 순간의 실수가 자신의 생사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도로 차단 임무를 부여 받고 땀 흘려 철조망과 지뢰를 설치하고 있는 병사들

모든 병사들이 화생방 보호의를 착용하자 전술 장애물 설치작업이 계속 됩니다. 훈련 중인 병사들에게 물어보니 이곳이 바로 대항군 주력부대의 예상 공격로라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대항군의 발목을 붙잡기 위해 철조망과 지뢰를 설치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진지합니다. 관찰통제관도 훈련 중인 병사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KCTC의 훈련목적은 단순히 승패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찰통제관의 조언을 받아들인 소대장은 즉시 문제점을 시정하고 병사들을 다독여 더욱 강력한 장애물 지대를 구축합니다. 아마도 대항군이 이 지역을 통과하려면 꽤 어려움을 겪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항군 역시 수십 회의 훈련을 통해 단련된 프로들이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장애물을 돌파한다고 합니다. 과연 병사들이 땀 흘려 설치한 철조망과 지뢰지대는 제 역할을 다했을까요? 결과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화학탄 낙하 상황을 의미하는 노란색 연막이 피어오르고 있다.

병사들이 땀 흘려 철조망과 지뢰를 설치하고 있는 순간, 꽝하는 폭음이 울립니다. 그리고 저 멀리 도로 한 가운데에서 연막탄이 노란색 연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병사들의 고함소리. “개스! 개스! 개스!” 이제야 상황이 파악됩니다. 적 화학탄이 낙하한 것입니다. 군대에 갔다 온 대한민국 성인남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MOPP 4단계. 하지만 KCTC에서의 느낌은 여느 화생방 훈련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실제 북한은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화생방 무기를 갖추고 있으며 유사시 이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군의 화생방전 대비태세 및 화생방 훈련의 강도는 매우 높습니다만 실제 KCTC에서 느끼는 화학전의 공포는 그 이상입니다.

화생방 경보 발령과 함께 방독면을 착용하는 병사들

순식간에 도로 밖으로 이탈한 병사들이 방독면을 착용합니다. 바람을 따라 병사들이 위치한 곳으로 천천히 밀려 올라오는 연막탄의 연기가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느껴집니다. 훈련 상황임을 알고 있지만 병사들의 방독면이라도 빼앗아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KCTC에서의 훈련이 실전과 같은 긴장감을 갖는 이유는 방독면에도 센서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센서가 장착된 방독면으로 호흡을 하게 되면 숨을 내 쉴 때마다 “삐~ 삐~”하는 작동음이 들리며 방독면을 착용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착용하지 못하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적 화학탄이 낙하하고 화생방 상황이 부여된 상태에서 일정시간 내에 방독면을 착용하지 못하면 사망 판정을 받게 됩니다.

방독면을 제때 착용하지 못해 사망 판정을 받은 병사

모든 병사들이 재빠르게 대응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속출합니다. 모든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앙통제실에 전송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관찰통제관보다 중앙통제실에서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지시를 내린다고 합니다. 사망판정을 받은 병사들이 하나 둘 관찰통제관 주변으로 모여듭니다. 병사들의 얼굴을 보니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만약 실전상황이었다면 이들은 고통스럽게 진짜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KCTC의 경험을 통해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현백에 들어가 잠시 죽음을 체험하는 병사들

전사한 병사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얼굴에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이들은 후방에 위치한 응급구호소로 이동하여 잠시 동안이나마 죽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영현백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병사들은 이때의 경험을 결코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부활한 병사들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보다 진지한 자세로 훈련에 임하게 됩니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 KCTC에서 체험하는 이런 상황은 훈련뿐만 아니라 병사 개개인의 삶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KCTC의 가장 큰 특징은 전사하는 병사들이 속출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예비대 병력으로 재편성되지만 지휘관 입장에서 사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은 엄청난 심리적 압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도로가 차단되어 지뢰지대를 우회하는 화생방 정찰 장갑차

KCTC 훈련의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돌발 상황에 대한 대응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 이날 훈련에서도 화생방 상황 파악을 위해 투입된 화생방 정찰차량이 방어소대가 설치한 철조망과 지뢰 때문에 되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적 화학탄이 낙하한 것으로 예상되는 정찰지역이 방어소대가 설치한 철조망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생방 정찰 장갑차를 위해 설치했던 철조망과 지뢰를 다시 걷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현명한 지휘관은 정찰 장갑차의 우회를 지시했습니다. 물론 누구의 실수도, 잘못도 아닙니다. 예기치 못했던 돌발 상황의 연속이야 말로 전쟁의 참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돌발 상황에 화를 내고 부하들을 질책하기보다 즉시 상황을 파악하고 현명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지휘관의 몫입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대항군. 이들은 국군 속의 적군이다.

대항군이 기동을 시작했다는 정보에 이번에는 훈련장의 반대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멀리가지 않아 도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는 대항군을 발견했습니다. 마일즈 장비와 방탄모만 아니라면 진짜 적군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들의 모습은 완벽한 적군,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현재 KCTC에서 대항군 역할을 전담하고 있는 제11대대는 국군 속의 적군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적군의 전략과 전술을 완벽히 이해하고 실제로 구사할 수 있는 부대입니다. 이들이 훈련부대를 압박하면 할수록 훈련부대는 더욱 강인한 전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백신을 통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듯 제11대대는 우리 육군이 적군에 대한 완벽한 대응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직접 채득할 수 있게 돕는 백신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과학화 전투훈련단으로 복귀했습니다. 곧 실제와 같은 전투가 벌어질 것입니다만 취재로 인해 이들의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의 경험으로도 KCTC의 가치를 확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보고, 경험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KCTC에서는 승패를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이죠.




KCTC 그 진정한 가치를 논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훈련에 동행하며 직접 보고, 듣고, 느낀 KCTC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실패를 통해 얻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KCTC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아니 이곳에서 승패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KCTC는 단순히 부대의 전투능력을 측정하고 우열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작은 실수가 수십 억 원의 장비 아니 그보다 더 소중한 장병과 국민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수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고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KCTC입니다. 현재 우리 군은 실전경험을 갖고 있는 장병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그나마 실전경험이라는 것도 실제 교전이 아닌 해외에서의 평화유지군 활동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반면 적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바로 KCTC입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KCTC는 장병 개개인이 마치 실전과 같은 전장체험을 통해 실전경험을 축적하고 자신의 한계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한 대항군 역할을 하는 제11대대의, 완벽에 가까운 적 전술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유사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유연한 대응능력을 배양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육군을 건강하게 만드는 백신, 바로 KCTC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