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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친을 군대에 보낸 여친이 지켜야 할 일들

원래 '곰신생활'이라는 게 그렇다.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야 할 때는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어서 걱정, 남자친구가 군대에 있을 때는 혹시 권태기에 접어들거나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 생길까봐 걱정, 남자친구가 제대할 때 되면 사회에 나와 어떻게 연애를 이어가야 하나 하는 걱정. 근 2년간을 걱정의 소용돌이에서 보내다 보면 빙빙 도는 놀이기구를 타고 막 내렸을 때처럼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오늘은, 바로 그런 시기에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볼 생각이다. 이름 하여 "남친을 군대에 보낸 여친이 지켜야 할 일들". 혼란스러운 시기에 그대를 지탱해 줄 이 세 가지 이야기를 잘 기억해 꽃신을 신기 바라며 출발해 보자.
 

1. '남의 얘기'에 떨지 않기


사연을 보내는 곰신들 중, '다른 곰신들이 한 얘기'나 '주변에서 지인들이 한 얘기'에 겁을 먹고는 확인을 받고자 질문을 하는 곰신들이 있다.

"정말 상병쯤 되면 다른 여자 만날 생각 하나요?"
"기다리는 여자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친구들 만난다면서 딴 여자 만난다고 하던데, 제 남친도 그럴까요?"


그러니까 이 충격과 공포를 선물하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듣곤 '혹시? 설마? 정말?'이라며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위의 질문에는 "사람마다 다릅니다."라는 답변밖에 해 줄 것이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해 보자. 어느 솔로부대 남성대원이 "여자는 정말 다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만 좋아하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그대가 이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해 줄 것 같은가? 분명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를 원하는 속물적인 여자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평생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여자도 있지 않은가?

누군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불길한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그건 그냥 '그 사람 얘기'라는 걸 잊지 말자. 학원을 몇 개씩 다녀도 성적이 안 나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부족한 과목만 수강하고 나머지는 혼자 공부해도 성적이 잘 나오는 사람이 있는 것 아닌가?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야, 내가 그 학원 다녀봤는데 거기 강의 들어봐야 성적 안 올라."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의 말에 휘둘리지 말자는 거다. 자꾸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겁먹게 되고, 실패에 대한 생각만 하게 되는 법이다.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누군가의 조언이나 충고를 듣고 싶다면 '실패담'이 아닌 '성공담'을 듣자. '연애'가 '영어'라고 한다면 영어를 잘 하는 사람에게 영어공부에 대한 자문을 구해야지 10년 영어공부를 해도 가위가 영어로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봐서야 되겠는가? '남의 얘기'는 '남의 얘기'일 뿐이라는 걸 잊지 말길 권한다.

2. 엄마 되지 않기


군화나 군화의 부모님에게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얘기겠지만, 이 문제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곰신들이 너무 많기에 꼭 해야겠다.

그대는 군화의 '여자친구'지, '엄마'가 아니라는 걸 명심하자.

타지에 가서 그 곳의 일과대로 생활하고 있는 군화에게 자꾸 마음이 쓰이겠지만, 여자친구가 담당해야 할 것들 이상을 감당하려 하지 말자. 내게 도착하는 곰신들의 사연 중에는 남자친구에게 매달 용돈을 보내 준다거나, 남자친구가 휴가 나오면 자신이 데이트비용 및 친구들과 놀 비용을 모두 부담한다거나, 남자친구가 필요하다거나 사달라고 하는 것들을 항상 소포로 보내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여자친구'의 선을 너무 많이 넘어간 행동이다.

여러 사정이 있어서 그래야만 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자신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희생을 해가면서 까지 뭔가를 하지 말자. 그러한 행동은 일방적인 관계를 만들 위험이 크다. 전에 한 번 소개한 <부당거래>의 대사처럼 누군가의 호의가 계속 되면 사람들은 그걸 자신의 권리로 착각하곤 하는데, 그대의 희생 또한 최악의 경우 '당연한 것'으로 생각될 위험이 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매일 편지를 써서 보내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고 권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매일매일 남자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차라리 전역하고 전해줄 수 있는 두꺼운 노트를 하나 마련해 그 노트들을 채워가길 바란다. 그대의 마음은 참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데 그걸 상대가 아무 노력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게 되어 버리면 깃털보다 더 가벼운 존재가 되기 쉽다. 그대가 지금 애지중지 하는 어떤 물건도 그 물건이 그대에게 여러 개 주어져 있다고 하면 지금 마음보다는 훨씬 더 그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남친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데에도 모른 척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동정심'이나 '모성애', 혹은 남친 혼자 고생하고 있다는 '죄책감'등으로 인해 엉뚱한 곳에 정성을 쏟지 말란 얘기다. 그리고 '물질적인 것'으로 마음을 표현한다고도 생각하지 말자.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면회를 가더라도 거창한 선물을 사가는 것 보다 카메라를 하나 준비해 가 면회 갈 때마다 기록을 남기는 편이 낫다. 휴가를 나온다면 비싼 외식을 하는 것 보다 손 꼭 붙잡고 편안히 얘기 나눌 시간을 갖는 게 좋고 말이다.

3. 따지지 않고 보여주기


남친이 군대에서 전역할 때가 되면, 스스로 '철이 들었다'고 생각하며 여러 가지 계획을 이야기 할 것이다. 뭐, 군대에서 전역하면 놀 생각만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곰신들의 군화는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다 좋은데, 남친이 철이 들었다며 '엄청난 계획'을 가지고 나오면 이게 또 문제가 된다. 흔한 사례들을 좀 열거하자면

- 고시를 보겠다.
- 비전이 없는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수능을 보겠다.
- 산에라도 들어가 영어를 마스터 하겠다.
- 복학을 미루고 일단 돈을 벌겠다.
- 학교를 그만두고 장사를 하겠다.

이런 것들이 있다. 뭐, 그 '현실성'에 대한 이야기는 좀 접어두더라도 남자친구가 꺼내는 대부분의 계획들이 '연애와 병행하기 어려운 것들'일 가능성이 높다. 말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이렇게 계속 기다린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결국 자기 살길 찾아서 살겠다는 거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 그 계획에선 '곰신'이 제외되어 있다.

그럴 땐 절대 그 계획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따지거나 "그럼 우리 연애는 언제 해?"라며 묻지 말자. 현재 남자친구는 초등학교 6학년 때와 비슷한 의지를 갖고 있는 거다. 초등학교 6학년 때면 다들 '내가 공부하면 서울대 가겠지. 못 가도 고대나 연대 정도 갈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군생활로 인해 좀 무감각해진 현실감각이 일단 원대한 계획부터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니 그가 그 계획대로 꼭 할 사람이라 생각하며 겁먹진 말자. 서서히 현실감각이 돌아오며, '마음만으로 되는 건 없다.'는 걸 곧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남자친구가 엄청난 의지로 그 계획을 실행해 나간다고 해도 긴장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남자친구를 응원해주고 그게 다 훗날 당신과 행복하게 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자. 남자친구가 계획한 공부나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느라 연락이 뜸해진다면 그대도 그 템포에 맞춰서 연애를 하면 된다.

단, 남자친구가 그러한 일들을 하며 당신에게서 무관심해지는 것 같다면 그 때는 "너 변했어."라든가 "왜 연락 안 해!"라며 윽박지르지 말고 보여주자. 그대에게 무관심했다간 그대를 놓치게 될 위험이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은 그대도 남자친구 만큼이나 열중하고 몰두할 것을 찾는 거다. 상대는 외롭지 않은데 당신이 자꾸 외롭다고 하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극단적 선택을 해 버릴 위험이 있다. 그러니 외롭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상대에게 왜 외로운가를 알게 해 주자.

"뜨거운 음식을 바로 냉장고에 넣으면 안 됩니다."라고 내가 그대에게 백 번 얘기하는 것보다 그대가 뜨거운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 식혔다가 다음 달 날아온 전기요금고지서에 0 이 하나 더 찍혀 있는 것을 보는 것이 훨씬 '호소'에 효과적이다. 바로 그 방법을 쓰는 거다.

곰신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고민을 나만 하고, 쟨 안 하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땐 '지금 나한테 생각이 참 많구나?'하고 생각하며 그 생각의 수도꼭지를 좀 잠그자. 모든 일을 다 예상하고 그 예상이 다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며 자주 인용하는 문장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 양귀자, <모순> 중에서


어떤 상황이 들이닥쳤을 때, 언제나 '감각적 대응'을 할 것이 아니라 마음에 굳건히 세워 둔 어느 문장에 기대 판단을 해 보자. 그리고 모두 예측한 뒤 움직이지 말고 움직이며 예측해 보자.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다르듯 내일의 마음은 또 다를 것 아닌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쉬운 곰신시절을 위에서 이야기 한 것들을 떠올리며 지혜롭게 보내길 바라며 이번 매뉴얼은 여기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