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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간 남친, 무조건 기다려야 할까?

곰신분들이 보낸 사연을 읽다보면, 그 중에는 이미 맹목적인 헌신이 되었거나 연애는 다른 사람과 하고 있으면서 단순히 미안하다는 마음 때문에 둘 사이의 끈을 잡고 있는 분들이 있다. 이번 곰신생활매뉴얼에서는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둘의 사이가 엇갈리기 시작했을때, 이해와 배려로 맞춰가며 노력할 수 있겠지만, 이미 한 쪽의 마음이 떠났거나 만신창이가 되었다면 그 만남을 지속시키기는 것은 70%의 정과 20%의 의무감, 10%의 혼란 이다.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 것 만이 최선은 아니다. 사소한 마찰에도 금방 지치는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문제겠지만, 만신창이가 된 마음을 가지고 질질 끌려가며 관계를 지속하는 것 역시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란 얘기다.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무언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사연을 주신 분에게 "남자친구분 전화번호 좀요.." 이렇게 부탁을 한 뒤, 남자친구와 통화를 해 속사정을 알려고 했다가는 셋이 경찰서에서 볼 수도 있으니 접어두도록 하고, 사연에서 나온 부분들을 함께 살펴보자. 


 A. 연락이 없는 남친

남친이 이등병이나 일병이라면,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군대에서 "내일 저녁에 연락할게" 라는 말은 기상청의 예보와 같다. 청소집합, 식사집합, 결산집합, 점호집합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집합이 발생하며 이러한 집합에서 빠져나와 이등병이나 일병이 연락을 한다는 것은 라스베가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응?)

소대(생활관, 생활하는 곳) 청소를 안했다는 갈굼부터 전투화를 닦지 않았다는 갈굼, 오늘 닦개(설겆이 할 때 스는 퐁퐁 뭍힌 스펀지)에 거품이 제대로 안났다는 갈굼, 식판을 닦지 않았다는 갈굼, 이등병끼리 피엑스 가서 뭘 사먹었다는 갈굼, 전에 보니까 전화할때 짝다리 짚었다는 갈굼, 고참 일하는데 옆에서 담배나 피웠다는 갈굼, 괜히 기분 나쁘니 옆에 앉아 보라는 갈굼 등등 사회로 치자면 눈 떠서 눈 감는 시간까지 수업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내 블로그에 연재중인 [군생활매뉴얼]을 참고하면 군대생활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일말상초(가장 많이 헤어진다는 일병 말, 상병 초)를 지난 시기에 뜸한 연락은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는 이제 완벽한 '군인'이 되었다는 얘기다. 함께 생활하는 군인들이 가족같고 군대가 집 같아 졌다. 그런 상황에서 시간을 내어 외부와 교신을 하는 것은 사회에서 군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쓴다 하면서 미루는 것 처럼 미루게 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내가 제대만 하면 소녀시대 태연 같은 여자랑 사귈 수 있어, 손담비도 어렵지 않아" 라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든다는 것이다. 부킹대학의 연구진들은 이 현상에 대해 '자뻑증후군' 이라고 이름붙이기도 했지만, 후임이 사귀는 여자친구 사진을 본 뒤, '얘도 이런 애랑 사귀는데, 나라고 못 사귈 거 없잖아' 라는 것에서 증상이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최악의 경우를 혼자 상상하면 우울증에 빠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배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역시, 조심스럽다. 


 B. 함부로 대하는 남친  

이제 본 모습이 나오거나, 권태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연인을 군대에 보냈다고 권태기에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형태도 없이 무색, 무미, 무취로 다가온다. 일에 몰두해 밖이 컴컴해진 것도 모른 채 밤을 맞이 한 것 처럼 그렇게 찾아온다는 얘기다.

서로 떨어져있고 연락할 방법의 한계가 있으며, 필요한 시기에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은 굉장한 악조건이다. 사회에서는 문자 한 통으로 풀 수 있는 갈등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냥 놓아 버리고 싶고, 다 정리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수 있다. 일명 '될 대로 되라' 식의 마인드가 찾아오며 '몰라 니 맘대로 해' 또는, '됐어. 짜증나' 같은 말들이 튀어나올 수 있다. 그리고 서로의 여운을 남기며 끊던 전화는 일방적으로 툭, 끊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상대가 군대에 있다고, 혹은 상대가 사회에 있다고 모든 것을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갈등의 골만 깊게 만들 것이다. 전화통화로 밀린 일기쓰듯 이야기 하는 것도 문제있지만, 아무 말 없이 상대도 알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역시 문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해도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있다. '넌 항상 그런식이잖아' 같은 말은 사회에서도 충분히 오갈 수 있는 말이다. 단, 그것을 해소하거나 사과하기 쉽지 않은 제한적 상황에선 사소한 다툼이 상대에 대한 포기를 부르기도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2년 안팎으로 사귄 커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 기간이라면 충분히 서로에 대해서 잘 안다는 착각을 하고, 지금까지 본 모습이 상대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위험한 시기다. 거기에 권태기까지 찾아온다면 바로 위 단락에서 이야기 한 '알 수 없는 자신감' 까지 가세해 상황은 더욱 안좋아진다. 지금 곰신과 군화가 겪는 문제는 사회에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이해는 바라는 것도, 하는 것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C. 이별의 냄새를 풍기는 남친

참 신기한 것은,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하는 모습은 제각각 다르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계기도 다르지만 이별하는 모습은 대체적으로 비슷하다는 거다. 연인들 사이에도 공휴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군대에서 휴가 나온 남친과 공휴일을 가지는 것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심 때문에 싫다는 말 못하고, '알았어. 보지 말자' 이렇게 말하는 것도 그닥 좋은 선택은 아니다.

군화나 곰신이나 둘 다 힘들다. 어느 쪽이 더 힘든지를 판가름한다는 것은 웃긴 일이다. 그냥 대충 연애가 하고 싶어서 만나던 사이라면 모를까, 이미 한번쯤 영원을 약속했을 수도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상황이 찾아오는 것은 참 슬프다.

누가 봐도 이제는 방생한 고기인데, 계속 놓아준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기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미련, 후회, 기다림 등등의 감정 때문이겠지만 나는 과감히 이야기해주고 싶다.

"세상에는 그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이기때문에 함께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정든 사람이기 때문에, 혹은 그동안 기다렸던 사람이기 때문에, 아니면 이 사람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맹목적인 헌신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뭐 저런 다툼 때문에 이별을 이야기 하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보내주신 내용에는 충분히 여자분 마음이 여러번 깨어지고 붙은, 그리고 무너졌다 겨우 쌓아 올린 겨우 버틸 힘만 남아있는 비명같은 사연이었기 때문이다.


군대갔다는 이유만으로 기다린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엉켜놓는 것 밖에 되질 않는다. 일방적으로라도 사랑하고 싶다면 굳이 더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아무리 손을 꼭 잡고 있어도 방향이 다른 두 사람은 결국 떨어지게 되어있다.

행여 곰신분들 중 흐트러진 현재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무조건 그의 손을 잡고 무조건 그의 말을 따를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 틀어진 각도를 조정해 다시 평행하게 한 곳을 바라보며 같이 갈 수 있어야 한다. [솔로부대탈출매뉴얼]에서 늘 강조하듯, 해달라는 것을 다 해주면 결국 '쉬운여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고, 자존심이 없는 여자를 만나는 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군대가면 정말 보는 눈이 바뀌냐는 질문이 많은데,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 매뉴얼에서 함께 살펴보도록하고 이번 매뉴얼은 여기에서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