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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대 소대장은 왜 입술이 다 터졌을까?

지금으로부터 바야흐로 7년전, 부대 특성상 자세한 공개는 할 수 없지만 한 소대에 정원이 12 밖에 안되는 특수한 곳이 있었습니다.

일년의 반 가량을 부대 밖에서 텐트치고 생활한다면 대충 어떤 부대인지는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이 훈련이 빡세네, 내무생활이 힘드네 하지만 우리는 사실 그때, 그게 힘든 일인 줄 잘 몰랐습니다. 살기 위해 수영을 배웠으며, 겨울에 삽이 안들어가서 땅을 팔 수 없을 때, 우리는 얼어죽지 않기 위해 서로 몸을 밀착시키는 전우애를 배웠습니다.

부대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하고 싶지만 더 했다가는 보안상의 이유로 제가 잡혀갈 수도 있으니 소개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겠습니다. 참고용으로 조금 더 얘기 해드리자면, 지금이야 물집만 잡혀도 의무대에 간다지만, 그때는 밖에서(?) 생활하다가 나무 뿌리에 발목이 겹질려도 이야기를 못했습니다. 갈비뼈에 금이 간 고참이 그걸 참아내고 훈련을 마친 선례가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등병 시절, 소대장이 바뀌었습니다. 청춘의 푸른 꿈을 안고 전진앞으로를 외칠 소위 였습니다. 남들이 이야기 하는 것 처럼 "자네가 이 부대 주임원산가?" 할 정도의 무개념은 아니었습니다만, 의욕이 넘쳐 무슨 훈련이든 앞장서서 뛰어나가는 열혈 청년 이었습니다.

2002년, 파주의 한 야산에서도 그랬습니다. 한 해의 대부분이 훈련이라 해가 진 이후에는 소대원들을 심하게 터치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 부대였지만, 당시 소대장은 너무 의욕이 앞선 나머지 산에서 무슨 담배를 피냐며 전원 금연령을 내리기도 하는 등, 통제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고참들이 소대장에게 앙심을 품은 것은 그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역시 보안상 자세히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통제하는 것이 많아졌다'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예비역 분들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훈련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야간에 침투 훈련을 위해 정말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오로지 달빛에만 의지해 산을 넘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의욕이 앞서는 소대장은 제일 선두에서 나를 따르라~ 놀이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의욕이 넘친 소대장이 전광석화 같은 몸짓으로 나무 사이를 지나 튀어 나갔을때,

크억-

사실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뭔가 투명한 벽에 부딪힌 것 처럼 소대장이 쓰러지고, 모두들 그쪽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네, 소들을 방목하던 곳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쳐 놓은 전기선에 소대장이 걸렸던 것입니다. 그 후 소(牛)대장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만, 그때는 정말 심각했습니다. 이미 소대장이 죽었다고 판단한 고참들도 있었고, 병원에서 알바를 한 적 있다는 고참은 가망이 없다며 그대로 묻어주자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단 깨워야겠다는 분대장이 소대장의 뺨을 가볍게 톡톡- 치기시작했고, 그래서는 안깨어 난다며 다른 고참이 따귀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지금에서야 고백합니다만, 소대원들이 돌아가며 일어날 때 까지 따귀를 때렸습니다. (소대장님 죄송합니다. 그러게 왜 그렇게 우리를 빡세게 굴리셔서...)

아무튼 일어난 소대장은 퉁퉁부은 뺨과 입술 안쪽이 왜 다 터졌냐며 피가 섞인 침을 뱉어내곤, 우리에게 전기선이 정말 위험하니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터진 입술 덕분에 일주일가량은 제대로 밥을 못 먹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후 소대장도 병사들을 이해하고 같이 생활하며 개념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제가 전역할 때 쯤에는 서로 부둥켜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떠올리다보니 그때 함께 군생활 했던 그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어집니다. 연락이 닿는 사람들과는 주말에 소주라도 한 잔 해야겠습니다.

특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