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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간 남자, 여자친구에 대한 심리변화 1부

군대에 남자친구를 보낸 곰신들의 사연을 읽다보면, 남자친구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 '원거리연애'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으며,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군대에는 '원거리연애'와 비교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간략히 얘기하자면 '계급'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휴가', '야간근무', '훈련', '종교활동' 등 사회에서는 느껴보기 힘든 감정과 특별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그동안 곰신생활매뉴얼에서 '곰신'의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군화'의 이야기를 좀 꺼낼 생각이다. 군에 보낸 남자친구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며,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그저 전화통화로 알 수 없는 단어를 섞어 가며 설명하는 일과보다 좀 더 알아듣기 쉽게 그들의 군 생활을 살펴보고자 한다. 각 단계별로 분석할 예정이니 내 군화는 지금 어느단계에 있는 지 함께 알아보자. (재미를 위해 단계별 관심도지수를 표시해놓았다.)

1. 보충대 (입소대대)

집생각 - ★★★★★   여자친구 - ★★★★★   먹을거 - ☆☆☆☆☆

훈련소에서 자대로 입소하는 날을 제외하곤 이 시기가 '군생활 극한의 공포'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회에서 입고 들어 온 옷을 벗어 박스에 넣고, 처음으로 군대의 짬밥과 마주하게 된다. 이등병만 봐도 무서워지는 시기가 바로 이 때다. 눈을 감으면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고, 여자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눈을 뜨면 시커먼 녀석들이 빡빡 깎은 머리로 좀비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몇은 담배를 못 피워 금단현상에 손을 떨기도 하지만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아직 군생활이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공포가 밀려든다.

2. 훈련소

집생각 - ★★★★★   여자친구 - ★★★★★   먹을거 - ★★★★☆

관심도지수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식욕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다. 살려면 먹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학교 식당의 밥보다 딱 200배 정도 맛이 없는 보충대에서는 몇 술 뜨다 버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훈련소에서는 밥도 안남기고 다 비워낸다. 팔을 식탁에 올리지도 못하고 왼손은 항상 무릎에 있어야 하며, 식판과 식탁의 끝선을 맞춰서 먹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잘 먹는다. 종교행사에서 나눠주는 초코파이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단 게 먹고싶어진다. 무릎이 까지고 팔꿈치가 까지며 발바닥에 동전만한 물집이 잡히고 겨울군번이라면 손끝이 쫙쫙 갈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회에서의 일들이 꿈만 같아진다.

3. 이등병

집생각 - ★★★★☆   여자친구 - ★★★★☆   먹을거 - ★★★★★

사회에서의 생활을 빗대 표현하자면 '질풍노도의 시기' 라고 할 수 있다. 위의 관심도지수에서는 집생각과 여자친구 지수가 낮아졌으며 먹을 것에 대한 지수가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군대에서 이등병을 나누는 기준은 '100일 휴가' 다. 지금은 '신병위로휴가'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회에 한 번 담금질 된 이등병과 아직 경험이 없는 이등병은 다르게 분류된다. 백일휴가를 다녀온 이등병은 알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휴가를 나간다고 현수막 걸리고 사람들이 모여 잔치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이 때부터 집생각과 여자친구 지수는 떨어지고 점점 군인이 되어간다.

4. 야간근무

집생각 - ★★★★★   여자친구 - ★★★★★   먹을거 - ★☆☆☆☆

야간근무를 고참과 나가면서 갈굼을 당하기도 하지만 - 그것은 소대 고참들의 이름을 다 외워보라거나 낮에 배운 군가를 불러보라는 것, 수통에 따뜻한 물을 채웠는가의 유무, 전투화를 닦았는가, 고참보다 먼저 일어나 준비했는가, 총기를 뺄 때 소리가 나진 않았는가의 확인 등이다- 총 들고 서서 한 시간이나 두 시간 가량 고독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은 머릿속을 포화상태로 만든다. 아직 반 년이나 남아있는 일병휴가에 대한 계획을 잡기도 하고,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건 뭔지, 이 군생활에도 정말 끝은 오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집에 계신 부모님과 여자친구와의 일들을 떠올리며 몰래 우는 병사들도 있다. 물론, 야간근무가 끝나고 뽀글이(봉지라면에 뜨거운물을 부어 먹는 것)를 먹을 때에는 그저 그 맛에 감동할 분이다.

5. 일병

집생각 - ★★☆☆☆   여자친구 - ★★☆☆☆   먹을거 - ★★☆☆☆

병장을 달아야 군생활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일병 3개월 정도면 군생활이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1차 위기는 '일병 3개월' 이며, 2차 위기는 '일병 말개월'이 된다. 적응한 것이다. 수능을 망쳐서 원하지 않는 대학에 가게 되었지만, 그 학교에 입학하고 1학년 2학기가 되면 수능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것 처럼 사회에서의 일들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후임이 들어오면서 부터는 고참행세를 하려고 하지만 위엔 아직 상병과 병장이 있어서 함께 혼나는 것 외에는 별 방법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 빗자루나 걸레를 드는 것이 몸에 익어 있으며 군대의 용어들을 대부분 다 알게 된다. 사실, 군대에서 일을 제일 많이 하는 병사가 '일병'이다. 집생각과 여자친구 대신 삽과 빗자루가 그 자리를 채운다.

6. 작업(진지공사, 잡일 등)

집생각 - ★☆☆☆☆   여자친구 - ★☆☆☆☆   먹을거 - ★★☆☆☆

남자친구가 일, 이등병인데 진지공사나 부대의 작업을 한다고 하면 연락을 못하거나 편지를 못 쓰는 것은 이해를 해야 한다. 그 시기엔 다음 날 일어나기 싫을 정도로 몸이 혹사당한다. 당신은 산에서 사람 가슴까지 올 정도의 깊이로 길을 내다가 큰 나무 뿌리를 만나 다시 덮고 다른 길을 파 본 적이 있는가. 하루 종일 지게를 지고 돌을 날라 본 적이 있는가. 국기게양대가 얼마나 땅속 깊히 묻혀 있는지 알고 있는가. 시멘트를 모래와 얼만큼의 비율로 섞은 뒤 가운데 물을 붓고 어떻게 치대야 A급이 되는지 알고 있는가. 폐타이어들을 모아 벽을 만들어 본 적이 있는가. 어제까지 없던 건물을 오늘 만들어 본 적이 있는가. 비누칠을 해도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풀을 뽑아 본 적이 있는가. 하루 종일 운동장에 나가 그 돌들을 다 주워본 적이 있는가. 백여미터의 길에 떨어진 낙엽을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 담아서 산에 뿌렸다가 높은 분의 "운치 있고 좋았는데……" 라는 한 마디에 다시 주워 뿌려 본 적이 있는가. 장갑차를 칫솔로 닦아 본 적이 있는가. 크리스마스 새벽에 눈이 온다고 빗자루 들고 나가서 하루 종일 길을 쓸어 본 적이 있는가. 눈물이 나와서 더 적진 못하겠다. 이런 군인들 한테 왜 전화 안 하냐고, 편지 안 쓰냐고, 그러는 거 아니다.


상병 이후의 심리변화와 다른 변수들은 다음 이야기에서 더 살펴보도록 하자. 심리변화 뿐만 아니라 입대 전날부터 남자가 어떻게 변화는지를 알고 싶다면 <군생활매뉴얼(클릭)>을 참고하길 바란다.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