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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생활백서 2화 - 훈련병의 콜렉트콜


때는 바야흐로 2005년 1월 28일, 102보충대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지급받은 전투복과 전투모, 전투화을 신은 내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한 손에 세면백을 들고 연병장에 도열해 있었다. 곧, 수십 대의 버스가 연병장으로 들어왔다. 3박 4일의 보충대 생활도 끝나는 거구나. 이제 본격적인 훈련병으로서 생활이 시작된다. 앞으로 닥칠 현실이 너무 두려웠다.

"27사단 인원들, 전원 탑승!"

우리는 신속하게 버스에 올랐다. 눈치 없게 창가 자리를 고르다가는 엉덩이도 못 붙여볼지도 모른다. 순서대로 자리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춘천에서 우리 부대까지는 대략 1시간가량 소요된다. 1시간 후,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대로 가야만 하는 건가? 창밖의 풍경이 쏜살같이 내 옆을 스쳐갔다. 운전병은 액셀레이터를 한껏 밟으며 속도를 높였다.

험준한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버스는 사창리로 진입했다. 조그만한 시골 읍내 같아 보였다. 사창리를 지나 신병교육대대가 있는 샛길로 들어갔다. 주위에는 온통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산 뿐이었다. 저 멀리 위병소에서 낯선 ‘이기자’ 구호 소리가 들렸고, 우리를 태운 버스는 위병소 안으로 들어갔다. 번쩍거리는 조교모를 쓴 조교들이 양 옆으로 도열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그들의 포스가 느껴졌다. 버스의 문이 열리자 교관이라고 적힌 모자를 쓴 간부가 버스로 탑승했다. 호랑이라도 잡아먹을 듯 부리부리한 눈매의 교관은 특유의 저음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반갑다 제군들. 이기자 부대로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신속히 하차하여 전방에 조교가 있는 곳으로 집합하기 바란다. 하차!"

우리는 세면백을 챙겨들고는 전방에 보이는 조교들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갔다. 옆에서는 조교들이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앞만 보고 뛰어갑니다아~!"

대기하고 있던 교관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음산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앉아!"

우리는 그 소리가 너무 작아서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도 못했다. 이윽고 우리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드는 조교들. 우리는 마치 맹수들에게 포위당한 양떼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얼마나 뒹굴었을까? 그제서야 동기들은 모두 모였고, 교관은 우리를 정렬시켰다. 그리고는 또 그놈의 음산한 목소리로 입을 떼기 시작했다.


"반갑다! 이곳은 중부전선의 수호자, 이기자 부대의 신병교육대대이다. 본 교관은 너희들을 강인한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앞으로 4주간의 훈련기간 동안 교관과 조교의 말을 충실히 따라주길 바란다. 어떠한 불미스러운 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알겠나?"
"넵!"
"어쭈, 목소리 그거밖에 안 나오나?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교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교들은 우리를 윽박지르며 다가왔다. 에구, 여기가 지옥이구나. 살려줘요~! 비로소 군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등병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밖에서는 이등병이라고 하면 무시하고 비웃지만, 그들은 모두 이 힘든 훈련소 과정을 무사히 수료하고 빛나는 이등병 계급장을 받은 용사들인 것이다.
한바탕 신나게 구르고 난 후, 우리는 대대연병장으로 이동했다. 문득 연병장 뒷산에 보이는 커다란 ‘정병양성’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무슨 실미도에 온 것 같다. 연병장에 도착하니 중대장이 기다리고 있었고, 총기수여식이 진행되었다. 드디어 나의 총이 생기는 것이다. 영화에서나 보던 소총을 이제는 내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된다. 조교들은 일일이 병사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훈련번호와 앞으로 생활할 내무실을 알려주었다.

"가츠!"
"네에엣!"
"59번, 네가 생활할 내무실은 3내무실이다. 알겠나?"
"59번 훈련병 가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총기가 지급되었다. 처음 만져보는 소총은 차갑고 무거웠다. 이제 이녀석은 나의 분신이다. 나는 총기를 받아들고는 내무실을 향해 뛰어갔다. 내무실 안에는 이미 총기를 지급받고 들어온 동기 녀석들이 있었다. 그들은 침상에 앉지도 못하고, 긴장한 상태로 침상 앞에 차렷자세로 서있었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이들과 함께 한달 동안 동고동락하며 지내야 된다. 우리 내무실은 51번부터 75번 훈련병까지 25명이 생활했다. 다들 나랑 동갑이거나 한 살 어린 친구들이었다.
마지막 훈련병이 들어오자 훈육분대장이 뒤따라 들어왔다. 훈육분대장이란 훈련병들의 내무생활을 책임지며 내무실에서 함께 지낸다. 물론 교육조교로서 우리를 교육시키는 일도 한다. 훈육분대장 김조교는 뽀얀 피부에 귀공자 타입이었다. 한 눈에도 나보다 어려보였다. 긴장한 우리들은 부동자세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착석!"

김조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는 침상에 앉았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김조교를 바라보며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훈육분대장 김OO조교입니다. 앞으로 4주간 여러분들의 내무생활을 책임질 것입니다. 아무쪼록 교육을 마치는 그날까지 몸 건강히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합니다!"

왠지 착해 보인다. 말투며, 표정이며 선한 사람이 틀림없어. 계급장을 보니 일병이었다. 그래 일병이면 아직 순수할거야. 왠지 시작이 나쁘지 않은걸. 59번인 내 자리는 침상 끝에서 3번째였는데, 김조교의 자리는 침상 끝이었다. 김조교는 우리의 신상기록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각자의 훈련번호가 적힌 주기표를 던져주고는 전투복에 부착하라고 했다.
바느질. 학창시절, 가정시간에 실습한 뒤로는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느질을 하다가 엄지손가락을 바늘에 찔렸다. 흑, 피난다! 나는 신음소리도 못내고 엄지손가락을 쪽쪽 빨며 주기표를 부착했다. 문득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느질에 여념이 없었다.
잠시후, 김조교는 우리의 신상기록을 다 작성하고는 내무실을 나갔다. 그러자 긴장이 풀린 우리들은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내 옆에 앉은 60번 훈련병은 자그만한 체구에 영락없는 까불이처럼 생겼다.

"아아 죽겠다~!"
"으응.. 근데 여기는 진짜 아닌거 같다."
"그래도 조교가 착한 거 같지 않아?"
"응 조교 같지 않아. 귀여워~♡"

곧 한두 명씩 입을 열기 시작했고, 같은 처지에 놓인 우리들은 금세 친해졌다. 이제 이들은 나의 전우다. 누구 하나가 잘못하면 연대 책임으로 다 같이 굴러야 한다. 끊을 수 없는 악몽의 고리로 단단히 결속된 것이다. 25명의 훈련병 전우들, 그리고 김조교와의 파란만장한 훈련소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 훈육분대장인 김조교도 우리랑 같이 잠을 잔다. 하지만 교육훈련 사후검토를 하느라 아직 내무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60번 훈련병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자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친 기색이 역력한 김조교가 내무실로 들어왔다. 우리는 잽싸게 자는 척 했다. 김조교는 내무실 인원들을 한번 둘려보더니, 우리 옆자리로 와서 옷을 벗었다. 그리고는 옷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실눈을 뜨고 보았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엄마손 파이’였다.
맙소사, 엄마손 파이다~! 과자를 맛본지 오래된 나의 혀끝으로 달콤한 엄마손 파이의 맛이 생생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먹고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김조교는 불침번을 부르더니 엄마손 파이를 하나 주면서 수고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후레쉬를 꺼내서 수첩을 비추며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동시에 엄마손 파이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나는 자다 깬 척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김조교를 바라보았다. 과자를 먹던 김조교는 깜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멋적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59번! 어디 아파?"
"59번 훈련병! 아닙니다!"
"이거 먹고 얼른 자라. 내일도 피곤할 텐데."

앗싸~ 대박이닷! 나는 김조교가 건네준 엄마손 파이를 손에 꼭 쥐고는 부들부들 떨면서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과자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고 한참을 노려보다 한입에 쏙 넣었다. 하악~ 이 맛이야! 온몸의 세포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어도 좋아. 갑자기, 옆에 있던 60번이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해서 60번과 나는 엄마손 파이를 입에 물고 행복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2주차에 접어든 신병교육대대의 생활은 정말 쉴 틈도 없이 바빴다. 강원도의 겨울 아침은 언제나 제설작업으로 시작된다. 훈련병이라고 예외는 없다. 오히려 더 열심히 제설작업에 임해야 된다. 제설작업에 얽힌 피맺힌 이야기는 <악마의 똥가루>편에서 상세하게 풀어놓도록 하겠다.
지난 주말,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편지를 썼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부모님과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보냈고 답장이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는 51번 훈련병이 신나게 눈을 쓸고 있었다. 51번, 키가 좀 작는 게 흠이지만 외모는 그야말로 완소남이었다.

"가츠야, 오늘쯤이면 답장이 오지 않을까?"
"과연 군대에서 이렇게 빨리 올까?"
"그건 그렇고, 사격 18발 맞히면 전화 쓸 수 있게 해준대."
"하악~ 전화하고 싶다!"

다음날은 기록사격이 예정되어 있었다. 20발 중 12발 이상을 맞히면 합격이고, 18발 이상을 맞히면 비록 컬렉트콜이지만 전화를 이용하게 해준다고 했다. 훈련병이라면 누구나 전화를 하고 싶겠지만, 여자친구가 있는 훈련병들은 특히나 더 간절하다. 제설작업을 마치고, 다음날 있을 기록사격을 위해 영점사격과 사격술 예비훈련을 받았다. 종일 차가운 바닥에서 뒹굴다보니 팔꿈치와 무릎이 시리고 아팠다. 잘하면 전화를 쓸 수 있다는 희망에 그 모든 아픔도 잊을 수 있었다. 
고된 훈련이 끝나고 훈련소의 밤이 찾아왔다. 내무실에서 점호청소를 하고 있는데 김조교가 들어오더니 모두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건 다름아닌 편지였다! 훈련병들은 마치 두둑한 월급봉투를 받는 것처럼 기뻐하며 편지를 받았다. 혹시 내 편지는 없는 게 아닐까?

"59번 가츠. 뭐가 이리 많아?"

우와~! 부모님이 보내 주신 편지와 여자친구가 보내 준 폭탄편지 다발로 인해 한번에 20통가량의 편지를 받았다. 부러워하는 동기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조교는 가지고 온 편지를 모두 나눠주고는 떠났고 다들 편지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부모님의 편지부터 조심스레 개봉했다. 편지봉투 안에는 어머니, 아버지, 동생이 각각 쓴 세 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갑자기 옆에 있던 60번이 눈물을 훔친다. 전염병처럼 내무실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녀석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낯익은 글씨체를 보자 벌써부터 마음이 아려온다. 최대한 밝게 쓰시려고 노력한 어머니 마음의 흔적이 내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동기들이 먼저 울어서일까?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콧잔등이 짠했다. 가족들의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여자친구의 편지를 보니 너무 많았다. 마침 저녁에 불침번 근무가 있으니 그때 몰래 보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51번 녀석만 홀로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저 녀석 편지가 오지 않았나 보다. 생긴 걸로는 팬클럽까지 있을 거 같은데 한 통도 오지 않다니... 많이 외로워 보였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주었다.

"51번, 내일은 올 거야."
"당연하지~. 내일이면 박스채로 올 거야."
"심심하면 내 거라도 하나 읽을래? 크크크."
"꺼져!"

하루가 지나고 다시 아침이 밝았다. 그날은 실탄을 쏘는 기록사격이 있는 날이라 아침부터 교관과 조교들이 우리를 빡세게 굴렸다. 사격장에서는 한 순간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만들 수 있기에 항상 긴장해야만 한다. 긴장도 긴장이지만 내 머릿속에는 온통 전화뿐이었다. 무조건 18발이다!

탕 탕 타탕~!

51번 훈련병의 사격솜씨는 일품이었다. 전날 편지를 못받아서였을까? 타겟에 분풀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신들린 듯한 사격이었다. 그 녀석은 자그마치 19발이나 맞혔다. 사격을 마치고 나오는 그 녀석의 모습은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했다.

"하하하, 전화는 나의 힘!"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한 발 한 발 혼신의 힘을 다해 사격을 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총알은 타켓을 빗나가고 있었다. 이거 전화는 커녕 자칫하다가는 불합격할지도 모르겠다.

"59번 가츠, 12발!"

망했다! 겨우 턱걸이로 합격했다. 오히려 후회스러웠다. 그냥 불합격하고 뒤에서 좀 구르다가 다시 사격할 걸 그랬나? 그럼 잘 쏠 수 있을텐데.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합격자들은 먼저 부대로 복귀시켰다. 돌아가는 군용트럭 안에서 51번은 침을 튀기며 한껏 뻐기고 있었다.

"아~, 이게 사랑의 힘인가?"
"어흑~ 부럽다."
"여친님을 위해 이 정도는 해야지. 가츠는 사랑이 부족하구나?"
"꺼져!"

내무실로 돌아온 우리들은 총기손질을 하면서 나머지 인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좀처러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합격할 때까지 쏘나 보다. 합격해서 너무 다행이었다. 전화는 뭐, 자대 가서 하면 되지.
그날 저녁, 조교가 들어오더니 우수사격자들은 행정반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51번은 우리를 향해 자축의 어퍼컷을 한 방 날리고는 행정반으로 신나게 뛰어갔다. 그의 뒷모습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다. 여자친구한테 답장 쓸 때 사격 이야기는 빼야겠다. 부끄럽다.
얼마나 오래 통화하는 걸까? 10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다. 흑흑,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단 1초만 들어도 원이 없을 텐데 말이다. 이윽고 조교와 함께 51번이 내무실로 돌아왔다. 조교는 연신 51번의 등을 다둑여주고 있었다. 51번은 내무실에 돌아오자마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저리 가!"
"뭐야? 말해 봐!"
"나 슬프지도 않아. 겁나 쪽팔려!"
"왜, 차였어?"

다들 51번을 측은해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여자친구가 있는 녀석들은 남 일 같지 않아서 표정이 더 어두웠다. 나는 재차 추궁했고, 그 녀석은 다 포기한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없는 번호래....."    "없는 번호래....."   "없는 번호래....."   "없는 번호래....."

그 순간에는 다들 위로한답시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당장 그 다음날부터 51번의 마지막 대사는 우리 내무실의 유행어가 되고 말았다.

훈련소 조교나 동기들과 친해질 만하니 어김없이 퇴소날짜가 다가왔다. 드디어 전투복에 빛나는 이등병 계급장을 부착하는 것이다. 이 작대기 하나를 전투복에 달기 위해 지난 한 달간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처음 입소했을 때만 해도 마냥 부럽기만 하고 하루 빨리 달고 싶던 계급장이었다. 그러나 막상 때가 되니, 정든 동기들과 헤어지는 것도 아쉽고 자대 가서 고참들과 겪을 생활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기쁨 반, 두려움 반이었다.
마지막 날, 새삥한 이등병 계급장이 부착된 전투복을 입은 우리는 엣지 있게 연병장에 도열했다. 정말 바둑판보다도 정확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대열이었다. 곧이어 사단장이 도착했고, 우리들의 퇴소식이 거행되었다.
그곳에는 한달 전의 겁 많고 나약했던 청년들이 아니라 군기로 재무장한 늠름한 군인들이 서있었다. 퇴소식이 끝나면 진짜 군인으로 태어나 본격적인 군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벌써부터 심장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기다려라, 내가 간다! 무적의 가츠가 말이다. 비록 이등병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