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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사신, 코브라 공격헬기를 직접 조종하다”


  지난 10월 25일 폐막한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09에서 미국 보잉사가 제작한 AH-64D 롱보우 아파치의 화려한 기동 성능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재가 되고 있습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고난도 공중기동으로 많은 관람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후문입니다. 실제로 공격헬기는 전장의 사신입니다. 베트남전쟁을 통해 처음 등장한 이후 공격헬기는 아군에게는 믿음과 용기를, 적군에게는 공포와 죽음을 선사하는 전장의 사신으로 군림해 왔습니다. 실전을 통해 그 가치를 입증한 공격헬기는 하늘의 전차로 기갑, 포병과 함께 현대 지상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첨단 공격헬기의 획득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 군의 경우 AH-1S 코브라 공격헬기를 주력 공격헬기로 운용하고 있으며 보다 강력한 성능을 갖춘 차세대 공격헬기 획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공격헬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아지고 있는 지금, 공격헬기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와 체험을 위해 AH-1S 코브라 공격헬기 시뮬레이터에 직접 탑승해 보았습니다. 진짜보다도 더 실감나는 AH-1S 코브라 공격헬기 시뮬레이터 탑승기를 지금 소개합니다.

위용을 뽐내고 있는 AH-1S 코브라 공격헬기 시뮬레이터

  육군항공학교 모의비행훈련장. 격납고처럼 커다란 건물에 들어서자 두 대의 모의비행 훈련 장비(SFTS)가 위용을 뽐내고 있습니다. 왼쪽이 UH-60 블랙호크, 오른쪽이 탑승 체험할 AH-1S 코브라 헬기 시뮬레이터로 지난 1999년 6월 도입됐고 6축 구동으로 실제 항공기와 동일한 비행 성능 및 특성을 재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장비 가격만 약 150억 원으로 실제 AH-1S 코브라 헬기 가격의 2배지만 시간당 운용비는 7.7만원으로 실제 코브라 공격헬기가 시간당 132만원을 필요로 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저렴합니다. 더욱이 실제 항공기로는 체험할 수 없는 각종 비상 상황을 정밀 재현할 수 있다고 하니 비싼 만큼 제값을 톡톡히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 AH-1S 코브라 공격헬기와 동일한 시뮬레이터 전방석

  가파른 계단을 따라 건물 2층 높이에 위치한 시뮬레이터에 올랐습니다. 실제 AH-1S 코브라 공격헬기의 전방동체를 그대로 뚝 잘라 놓은 것 같은 조종석을 중심으로 전방에는 대형 스크린이 펼쳐져 있고 그 뒤에는 통제장치와 대기자용 의자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육군항공학교 제3대대 비행교관 김주도(38) 준위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승용차 운전석보다도 비좁은 전방석에 몸을 밀어 넣었습니다. 폭 1m가 넘지 않는 코브라 공격헬기는 전방석에 부조종사 겸 사수가, 후방석에 조종사가 탑승하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묵직한 진동과 함께 드디어 코브라가 육군항공학교의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순식간에 육군항공학교의 활주로가 점처럼 작게 보입니다. 하지만 지평선이나 지상의 지형지물, 혹은 고도계를 확인하지 않으면 항공기가 상승 중인지, 그렇지 않으면 제자리 비행 중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시뮬레이터로 구현한 다양한 기상환경 중 구름 위의 비행

  “이제 실제 비행 중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기상상황을 체험해 보겠습니다.” 김 준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구름 한 점 없던 푸른 하늘에 난데없이 안개가 끼었습니다. 안개가 짙어짐에 따라 급격히 악화됐고 잠시 후에는 아예 주변이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다음은 구름 속을 비행하는 상황입니다.” 김 준위의 말과 함께 흐릿하던 주변 풍경이 아예 하얗게 변해 버렸습니다. 김 준위가 콜렉티브(Collective)를 조종해 기체를 상승시키자 잠시 후 기체는 구름을 뚫고 하늘 위로 상승했습니다. 시뮬레이터로 구현한 가상 환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앞에 흰 구름이 거대한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하지만 멋진 풍경에 대한 감상도 잠시, 다시 주변 상황은 해질녘, 야간, 눈과 비가 내리는 악천후로 풍경사진첩의 책장을 넘기듯 순식간에 변화했습니다. 꼭 귀신에 홀린 기분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기상 변화의 묘사가 가능한 시뮬레이터를 사용해 기본비행에서 계기비행, 야간투시경(NVG) 비행, 전술비행, 비상절차, 중대 단위 전술훈련, 사격 등 개인부터 팀 단위 전술훈련까지 다양한 훈련을 실감나게 실시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 지형이 입력되어 있어 어느 지역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승사격장에서 2.75인치 로켓 사격을 실시하고 있다.

  다음은 각종 무장 발사와 전술기동 체험을 위해 고도를 높이지 않고 저공으로 전술비행에 들어갔습니다. 눈 아래로 축사와 민가, 고속도로 등의 지형지물이 빠른 속도로 휙휙 스쳐 지나갑니다. 만약 실제상황 이었다면 민원이 빗발쳤겠지만 시뮬레이터 상에서는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전술지형비행은 전시 조종사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비행으로 저공수평비행, 등고선 비행, 침투비행 등이 있습니다. 저공수평비행은 이름 그대로 고도만 낮춰 비행하는 방법이며 등고선 비행은 능선과 지형지물에 따라 고도를 오르내리며 비행하는 방법입니다. 가장 난이도가 높다는 침투비행은 거의 지면과 같은 저고도에서 지그재그로 빠르게 비행방향과 속도를 변화하면서 적 레이더와 대공화기의 공격을 회피하는 방법입니다. 순간적으로 메인 로터 2장에 단발 엔진인 AH-1S가 이정도 공중기동성능을 갖추고 있는데 메인 로터 4장에 쌍발 엔진인 AH-64 아파치의 공중기동성능은 과연 어느 정도 일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수 십 대의 코브라가 하늘을 가득 채웠다. AH-1S SFTS는 팀 단위의 전술훈련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김 준위와 한 팀을 이뤄 실제 전장 상황을 체험하기로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활주로에 수 십 대의 코브라 공격헬기가 나타났습니다. 남하하는 적 기갑부대를 제압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전방 기지를 이륙! 수 십 대의 코브라가 침투비행 패턴으로 기동하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전선에 근접할수록 화염과 연기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아군의 격렬한 공격에도 도강을 시도하는 적 전차들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최적의 발사 위치를 잡고 가장 선두의 적 전차를 조준! 토우 대전차 미사일을 활성화 시킨 다음 발사! 한참을 날아간 토우 대전차 미사일이 적 전차에 명중하자 섬광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연이어 토우 대전차 미사일이 발사되고 그때마다 섬광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모두 명중입니다. 재보급을 위해 이탈합니다.” 임무를 완수한 코브라는 전선을 이탈해 기지로 복귀했습니다.

교관 위의 교관, 육군항공학교 제3대대 비행교관 김주도(38) 준위

  전장 상황 체험을 끝으로 이날의 시뮬레이터 탑승을 종료했습니다. 주변의 영상이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시뮬레이터에 탑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정도로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시뮬레이터의 그래픽은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비디오 게임에 비하면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6축 구동모션을 통한 실제와 같은 생생한 감각 전달과 모든 기상변화의 묘사, 한반도 전 지형의 영상 구현은 군용 시뮬레이터의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뮬레이터 탑승을 통해 공격헬기의 모든 것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 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날의 경험은 공격헬기에 대한 이해와 시뮬레이터의 중요성을 공감하는데 절대적인 도움이 됐습니다. 실제 공격헬기 조종사들 역시 시뮬레이터와 실제 비행훈련을 통해 정예 육군항공 전투전사로 탄생하게 됩니다. 이번 시뮬레이터 탑승은 공격헬기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모의 비행훈련 장비(SFTS)

 흔히 SFTS(Synthetic Flight Training System)라 불리는 모의 비행훈련 장비는 실제 항공기와 동일한 비행성능 및 특성 그리고 상황묘사를 통해 실제와 같은 훈련을 가능케 하는 최첨단 훈련장비다. 특히 실제 항공기로는 훈련이 불가능한 악천후, 엔진 및 항공기 주요 계통 고장, 조종사 부상, 비상착륙 등 다양한 위기상황을 설정해 반복 숙달훈련이 가능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실제 임무 수행도중 돌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충분한 모의훈련 경험을 통해 상황을 통제하고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육군은 6대의 시뮬레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개인 훈련에서 팀 단위의 전술훈련까지 다양한 비행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연간 3000명 이상의 육군항공 조종사가 모의 비행훈련 장비를 활용해 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들의 총 비행시간은 4000시간 이상이다. 여기에는 해군 및 공군 회전익 조종사도 포함되어 있다. 모의 비행훈련 장비가 실제 비행훈련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상황의 재현, 전천후 비행능력 배양, 안전성 및 경제성이 보장되는 모의 비행훈련 장비의 활용범위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