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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기 직전인 곰신과 군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연애를 하며 가장 신중해야 할 때가, 바로 갈등이 찾아왔을 때다. 많은 커플들이 그 시기에 술김에, 홧김에, 말 나온 김에 등의 핑계로, 진심보다 좀 더 과장되거나 진심과 다른 말을 하고 만다. 예컨대 내 속마음을 가감 없이 말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자존심 때문에 "어 그래? 알았어. 마음대로 해."식의 이야기를 해 버리는 것이다.


굳이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애써 결론 냈다가, 영영 돌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흔들리는 남자친구에게 '차라리 잘 됐네. 그래, 헤어지자.'라는 마음으로 그간 서운했던 점들을 쏟아낸 한 곰신. 그녀는 자신만 상처받는 것 같다는 생각에, 모진 말을 해가며 군화에게 상처를 냈다. 때문에 재회의 가능성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일주일 후, 그녀는 자신이 군화를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 줄 수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곤 다시 다가갔지만, 발로 밟아 짓뭉개버린 그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늘은 이처럼 '가장 신중해야 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곰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말 한 마디, 작은 행동 하나에도 큰 엇갈림이 생길 수 있는 그 순간, 제일 필요한 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자.



1. 내 심정 말해주기


휴가 나온 남자친구와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남자친구가 친구들과 노느라 여자친구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했다는 사연이 있었다. 사연을 보낸 곰신은, 남자친구가 저녁에 만나자기에, 오후 여섯 시쯤 만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아홉 시가 넘어도 남자친구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냥 친구들 얼굴 잠깐 보고 이야기 좀 할 거야. 오래 안 걸려."


라고 말했던 남자친구였다. 그런데 그는 친구들과 다섯 시간을 보낸 것이다. 화장까지 다 한 상태로 전화벨이 울리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그녀는 분노했다. 아니, 여덟 시가 넘었을 때까지는 분노했지만, 그 후로는 '언제까지 연락 안 하나, 어디 한 번 보자'며 오기로 기다렸다. 남자친구의 전화가 온 건 열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뭐해? 집이야? 내가 너무 늦게 전화했나?"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야기하는 남자친구의 행동에 질려 그녀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화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내야 할 지 몰라 그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최대한 침착하게 풀어 가리라 다짐을 하며 말을 꺼냈다. 


곰신 - 지금 나랑 장난해?

군화 - 미안해. 화났어?

곰신 - 화? 지금 몇 신 줄 알아?

군화 - 열 시.

곰신 - 지금이 저녁이야?

군화 - 미안해. 지금 나올 수 있어?

곰신 - 친구들하고 더 놀아. 전화 끊어.

군화 - 아 진짜 미안해. 지연아-

곰신 - 됐어. 끊어.


지금 나올 수 있냐고 묻는 남자친구의 말에, 그녀는 아무래도 폭발할 것 같아서 일단 전화를 끊었다. 남자친구는 계속 카톡으로 사과의 글을 보냈다. 그녀는 확인하지 않고 잤다. 


저 일이 있고 나서 둘은 남자친구의 복귀 전날까지 연락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그녀가 "나한테 할 말 없어?"라고 묻자, 남자친구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다 한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그 태도에 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 하지만 이런 결말을 원했던 것은 아니기에 어떻게든 사과를 받아내려 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도 모른 채 남자친구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휴가 첫 날 자신은 정말 일찍 연락하려고 했는데, 친구들과의 대화가 길어져 어쩔 수 없이 늦어졌다는 변명만 했다. 자기도 억울하단 식의 얘기였다. 


위와 같은 상황에선 '화장까지 다 하고 연락만 기다리던 나는 얼마나 피가 말랐는지''늦어지면 늦어진다고 말해줬으면 어땠을지' 등을 명확하게 지적해 주는 것이 좋다. 잘못을 저지른 대부분의 남자는 얼른 그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자 말을 돌리거나, 최대한 문제를 축소하려 변명을 늘어놓기 마련이다. 때문에 사과만 기다리고 있다가는, 상대의 말 돌리는 모습과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에 더욱 분노하게 될 수 있다. 


남자친구 행동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그 행동 때문에 자신이 받은 상처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이 현명한 대처방법이다. 여자가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면 남자는 숨지만,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보듬어주려 다가온다는 것을 꼭 기억해 두길 바란다. 



2. 돌보지 않으면 시든다는 것 알려주기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가 '우리가 정말 사랑인지 모르겠다'며 시간을 갖자고 말했다는 사연도 있었다. 그 통보를 받은 곰신은 지난날의 추억을 곱씹으며 반성도 했다가, 화도 냈다가 하며 둘의 시간을 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차라리 딱 잘라 헤어지자고 했으면 정리를 하든 매달리든 할 텐데, 남자친구는 울면서 그녀에게


"이렇게 우리 사이를 잠깐 정지시켜두고,

서로의 마음이 어떤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 

그 시간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 

며칠 후가 될 수도 있고, 몇 달 후, 아니면 몇 년 후가 될 수도 있어. 

시간이 지나 우리가 인연인 게 확실해지면, 그 때 다시 사랑하자."


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 상황을 두고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지인들은


"다른 여자 만나보겠다는 거네? 뭘 더 생각해. 헤어져."

"그게 이별통보지 뭐야. 어이가 없네. 앞으로 다신 보지 말자 그래."

"널 보험처럼 생각하겠다 이거 아냐. 인연 끊어버려."


라며 하나같이 헤어지라고 말했다.


나도 헤어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설렘이 정으로 치환되는 과정을 남자친구가 깨닫지 못하고는, 그저 그게 '확신 없음'이라 착각하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눠보길 권하고 싶다. 지금처럼 "어쨌든 나랑 사귀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거지?"라며 확인만 받으려 하지 말고, 좀 더 큰 이야기를 남자친구에게 가르쳐 주는 거다.


먼저, 익숙함에 대해 말해주자. 화분을 가꿀 때에도 처음 씨를 뿌리고 물을 주던 설렘은 서서히 사라지지 않는가. 그것처럼 연애에서도 가슴 뛰던 첫 마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으로 환원된다. 설렘이 사라졌다고 해서 새 화분을 들여 놓는다면, 앞으로 화분에게 익숙해 질 때마다 새로운 화분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 화분을 가꾸는 것에 일시정지가 없듯, 연애에도 일시정지는 없다. 화분은 돌보지 않으면 시들고 결국엔 죽는다. 남자친구의 "시간이 지나 우리가 인연인 게 확실해지면"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나중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때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지 '시간이 지난 후의 우리'가 아니다. 돌보지 않고 방치해 둔 '우리'는 그쯤이면 시들고 말라 죽어있을 테니 말이다.


설렘이야 새롭고 눈길 가는 이성만 만나도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믿음과 애정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말해주자. 그건 열매 맺을 정도로 화분을 정성스레, 또 오래 가꾼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거다. 익숙함과 편안함을 권태기라 생각한 남자친구가 방황의 길로 접어드는 것일 수도 있으니, 이런 얘기를 차근차근 나눠 본 후, 그래도 남자친구의 마음이 확고하다면 그 때 헤어지길 권한다.(이렇게 긴 말보다, 솔직히 난 그대를 토닥토닥 해주고 싶다는 걸 적어둔다. 토닥토닥.)



3. 한 번 더 생각하기


다가오는 남자가 있어 흔들린다는 곰신의 사연도 있었다. 그냥 치근덕거리는 수준의 들이댐이면 무시하고 말 텐데, 그녀는 그 남자의 진심이 느껴진다고 했다. 게다가 상병이 되고 나서는 통화할 때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남자친구와 달리 그 남자는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며 이것저것 챙겨준다고 한다. 점점 그 둘을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친구가 사회에서 나랑 연애할 때에도,

날 이렇게까지는 안 챙겨줬던 것 같은데….'


그녀는 지금 혼란스럽다. 


사연을 읽어보면 이미 곰신의 마음이 '새로운 남자'에게로 많이 기운 듯 하기에,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곰신의 말대로 '정말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난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도 계속해서 들이대는 점.

- 그 남자와의 대화가 특별히 남자친구와의 대화에 비해 밀도 높진 않다는 점.

- 곰신이 남자친구에게 불만인 부분을 대화를 통해 지적한 적 없다는 점.

- 성격 특성 상 사교성이 좋은 것은 그 남자라는 점.(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함.)


라는 부분이다. 상수도 수압이 약한 집에서 '졸졸졸' 나오는 물 때문에 고생하며 살다가, 물이 콸콸 나오는 집을 구경하게 된 것이라고 할까. 그 집이 정말 좋은 집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상대적으로 좋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잠깐 통화할 수 있는 것과 달리 그 남자와는 언제든 카톡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은가. 거기다가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한 특유의 사교성까지 갖추고 있다. 재미없는 훈련얘기,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만 하는 남자친구와는 분명 대조적일 수밖에 없다. 


두 사람 사이에 튼튼한 믿음의 기반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헤어질 것이 뻔하다. 하지만 한 뼘 정도라도 둘 사이에 그런 기반이 만들어져 있다면, 잠시 그곳에 서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길 권한다. 생각하는 동안은 모든 걸 잠시 내려놔도 괜찮다. 이 선택이 한 사람과의 인연을 영영 끊을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최대한 신중하게 판단하자. 


내 희망이라면, 그렇게 곰신이 고민하고 있을 때, 군화에게 편지가 오는 것이다. 그럼 곰신은, 저 먼 곳에서 이런 상황도 모른 채 곰신만을 생각하며 편지를 적어 보낸 군화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이 흔들림도 다시 잠잠해 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 



당시에는 술김에, 홧김에, 말 나온 김에 서로 상처만 주고 헤어졌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상대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는 잘 지내냐고 안부라도 한 번 묻고 싶지만, 헤어짐의 순간에 너무 모질게 굴거나 상처 내는 일에만 몰두했던 까닭에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자신의 과거 상황과 같은 처지에 놓인 곰신들에게 "나처럼 헤어지진 마."라는 얘기 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 


난 이 글을 읽는 곰신들이 그 전철을 밟지 말았으면 한다. 그건 수능시험 듣기평가를 풀 때 정도의 신중함만으로도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일이다. 이별이라는 건, 함께 만들어왔던 세계를 폐기처분 한다는 것인데, 그걸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할 순 없는 일 아닌가. 사랑하는 만큼 상대에게 기회도 줘 보고, 또 그만큼 인내해 보길 권한다. 연애는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니 말이다. 자 그럼, 힘이 되는 사랑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