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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화를 숨 막히게 만드는 곰신의 행동들 세 가지

언젠가 한 친구가 택배를 기다리다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저녁 약속에 신고 나갈 구두를 주문한 것인데, 평소에는 오후 3~4시면 오던 택배가 6시가 다 되도록 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약속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오지 않는 택배 때문에 친구는 전화를 걸었다.

 

친구 - 오늘 받을 물건이 있어서 전화 드렸는데요.
기사 - 어디세요?
친구 - 마두동 뭐뭐 번지요.
기사 - 거긴 8시나 돼야 가겠는데요. 오늘 화요일이라 물건이 많아요.
친구 - 그게 구둔데, 제가 저녁에 꼭 신고 나가야 하거든요.
기사 - 최대한 일찍 가 볼 게요. 7시 까지요.
친구 - 제 약속이 7시에요.
기사 - 여기 마치고 최대한 일찍 가도 7시가 될 것 같은데요….

 

저 문제는 기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물건을 받는 것으로 해결되긴 했다. 그런데 친구는 물건을 받으러 가면서, 또 받고 돌아오면서 계속해서 짜증을 냈다. 자신은 오후 두 시부터 기다렸으며, 택배를 기다리느라 집에 묶여 있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했다.

 

멀리 떨어져 저 상황을 바라보면, 택배기사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할당된 물건을 아침부터 열심히 배달했을 뿐이고, 일이 많다보니 자연히 친구의 물건은 오후 일곱 시 쯤에 배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느라 예민해진 친구는, 택배기사가 일부로 골탕이라도 먹이려 그랬다는 듯 괜히 택배기사에게 짜증을 냈다.

 

 

1. 우리 사이를 더 생각하라고!

 

위의 이야기에서, 친구가 구두를 하루 일찍 주문했다면 문제는 더욱 명쾌하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오늘 당장 신을 구두를 언제 올지 몰라 기다리지 않고 하루 전에 미리 받았을 테니 말이다. 이게 너무 억지라고 생각한다면, 그럼 오전에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오늘 택배가 늦어진다는 걸 미리 알고 기사를 찾아가 일찍 받아올 수 있었을 것이고, 기다리느라 집에서 멍하니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연애에서도 저런 일이 벌어진다. '남자친구가 알아서 잘하길' 기다리기만 하는 곰신들이, 택배를 기다리던 내 친구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남자친구가 조금 더 우리를 먼저 생각해 주길 바랐어요.
저번엔 외출 나왔다고 하면서 후임이랑만 놀더라고요.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으니 저랑 통화도 더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오전에 잠깐 통화하고, 들어가기 전에 통화한 게 다였어요."

 

혼자 서운함을 품은 곰신은, 이후 남자친구의 말과 행동을 모두 분석하며 '우리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찾아내는 것에 몰두했다. 그러다보니 페이스북에 올라온 남자친구의 글, 진지하고 깊은 얘기가 오가지 않는 남자친구와의 전화통화, 전과 달리 줄어든 편지교환 등이 모두 '용의자'가 되었다. 용의자를 발견하자 곰신은 더욱 더 남자친구를 압박했다. 그래서

 

결국 둘은 헤어졌다.

 

막연히 "우리 사이를 더 생각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약속이나 지침을 정했으면 어땠을까? 이러이러한 부분들이 날 속상하게 하고 또 걱정시킨다고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외출 나왔을 때에는 몇 시에 전화통화를 하기로 약속했다거나, 요즘 편지가 뜸하니 앞으로는 편지로도 많은 얘기를 하자고 권했다면 분명 결과는 달라졌으리라 생각한다.

 

"제가 원하는 걸 다 말해서 남자친구가 그대로 하는 거라면,
그건 너무 '엎드려 절 받기' 같잖아요?"

 

일단은 엎드려서라도 가르쳐 주란 얘기다. 뭘 원하는지 말도 하지 않은 채 '어떻게 하나 보겠어.'의 자세만 고집하면, 곰신은 곰신대로 기대한 반응이 오지 않아 실망하고, 군화는 군화대로 대체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건지 알 수 없어 짜증이 난다.

 

"선생님, 이 문제는 어려워서 못 풀겠어요."라고 말하는데, 선생님이 "그래도 풀어봐. 풀 수 있는 데까지 풀어봐."라고 말하면 그대도 문제집을 집어 던지고 싶은 기분이 들 것 아닌가. 무작정 '쟨 문제를 풀기 싫어서 그러는 걸꺼야.'라는 시각에서 보면 괘씸하게 보일 뿐이다. 갈구지만 말고 가르쳐주길 권한다.

 

 

2. '쾅'소리 나게 문 닫는 곰신

 

연인은 당연히 싸우게 된다. 서로를 아프게 하는 모난 부분들을 다듬어야 하고, 벌어진 두 사람의 간격을 좁혀야 하니 말이다. 싸우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다. 갈등이 없다는 건, 상대에게 맹목적으로 맞춰가고 있다거나 기대를 접은 채 덤덤한 마음으로 연애에 임한다는 걸 의미하니까.

 

중요한 건 '싸웠다'는 사실 보다 '싸움을 어떻게 마무리 했는가'라는 점이다. 싸움 이후 둘의 관계는 '종결'에 더 영향을 받는다. 한 곰신의 사연을 보자.

 

"헤어지는 걸 원하는 거라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어요.
그러고 나서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올려 둔 사진들 다 지우고, 상태를 '싱글'로 고쳐 놓았죠.
너무 속상해서 담벼락에도 그 심정을 다 적어 놓았어요.
사랑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헤어지면 끝이라는 거. 남친도 볼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전화가 안 오더군요.
페이스북에 들어가 봤더니, 제 글을 다 읽었는지 자기 페북도 정리했더라고요.
참나. 전 친구삭제는 안 했는데, 남친은 절 친구삭제까지 했어요."

 

그러니까 저 곰신은 '난 모션만 취한 건데, 남친은 그 모션을 보고 진짜로 헤어지려고 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어제 웹에서 황당한 블랙박스 영상을 한 편 봤다. 2차선에서 주행하던 남성운전자가 올린 영상인데, 거기선 3차선에서 2차선으로 옮기려던 한 여성운전자가 남성운전자 차량을 들이받았다. 그러고는 내려서 한다는 말이,

 

"아저씨, 방금 버스가 2차선으로 끼어들기 했죠?
전 그 버스 뒤만 따라가고 있었다고요.
제가 버스 뒤 따라가는 거 못 보셨어요?
아저씨가 양보를 해야지, 왜 치고 들어와요!"

 

였다. 깜빡이도 켜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버스 뒤를 따라갔든, 트럭 뒤를 따라갔든 그건 그 여성운전자 사정이고, 깜빡이 켜지 않은 채 차선변경 하려다 들이 받았으면 잘못은 여성운전자의 몫이다. 사연을 보낸 곰신은 이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진심으로 헤어지려 한 것이든 아니든, 헤어져 주겠다며 전화 끊고 '헤어짐의 수순'을 밟는 건 누가 봐도 헤어지겠단 얘기다.

 

남자친구와 싸운 곰신 중 대부분이 자기 잘못에 대해 길게 변명만 늘어놓는다. '난 이러이러하니 화가 나서 그런 거지만, 걘 진심으로 그런 것 같다.'라는 이상한 논리다. '쾅'소리 나게 면전에서 문 닫는 건 헤어질 때 하는 표현인데, 그래놓고는 '진짜 헤어질 생각은 아니었다.'는 말만 한다. 변명은 그만 두고, 말 자르고 전화 끊기, 남자친구 전화 안 받기, 헤어지자고 말하기, 추억 정리하기 등은 정말 헤어질 생각이 있을 때만 사용하길 바란다. 남자친구를 발로 차 놓고 "왜 화를 내? 화를 내니 네가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건 상대의 목을 조르는 일이다.

 

 

3. 애정표현에 목숨 걸기

 

부대에 있는 전화를 사회의 '공중전화'와 비슷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곰신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생활관 내부에 있는 전화기는 복도에 자리한 까닭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통화내용이 노출된다. 생활관 외부에 있는 전화기는 그나마 칸막이가 있긴 하지만 문은 없으며, 전화기가 몇 대 없는 까닭에 자유시간에 전화를 하려는 군인들이 뒤에 줄을 서 있다.

 

"주중에는 거의 전화를 안 해요. 주말에나 잠깐 통화할 수 있구요."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게 어려운지, 한 번을 안 해 주네요."
"뭔 눈치를 그렇게 보는지 제 물음에 대답만 하고, 자꾸 전화를 끊으려고 해요."

 

회사 사무실 내부와 1층 로비에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직원들에게 통화내용이 노출될 수 있으며, 직장 상사도 뒤에 줄을 서서 전화 하려고 기다린다고 생각해 보자. 아 그리고 부대마다 다르긴 한데, '신입사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등병 시절'에는 '도우미 병사'라는 고참이 전화 할 때도 옆에서 붙어 있는 경우가 있다.

 

남자친구의 이런 상황을 모른 채, 주변에서 생각 없이 막 뱉어내는

 

"남자친구 마음이 변한 것 같은데?"
"애정표현도 잘 해주지 않는데 뭐 하러 사귀어?"
"권태긴가 보네. 일말상초에 다 헤어진다잖아. 그냥 정리해."

 

따위의 얘기만 듣다 보면 흔들리기 쉽다. 흔들리다보면 뚱한 마음이 들어 전화도 퉁명스럽게 받기 마련이고, 남자친구는 분위기가 왜 그런지 전혀 감을 못 잡으니 "화났어?"라고 묻기만 한다. 통화를 하며 그저 수화기만 붙들고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이렇게 멀어지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난 위와 같은 상황에선 '대화의 창구'를 늘리길 권한다. "전화로 사랑한다고 말해줘."라고 말하기 보단, 편지나 인터넷 등 다른 루트를 통해 애정표현을 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적 통화가 보장되기 전까지는 그나마 표현하기 자유로운 방법들을 사용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자유로운 사적대화가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의 애정표현이 기대 이하라서 불만인 경우라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드러내 놓고 대화를 나누자. 잡담이나 수다 같은 겉핥기식 대화를 세 시간 하는 것보다, 속마음을 털어 놓는 대화 삼 분 하는 게 훨씬 값지다. 늘 얘기하지만, 남자는 '문제해결'에 목숨을 건다. 문제가 뭔지 얘기하면 해답을 구하려 열심히 노력할 테니, 허심탄회하게 문제를 꺼내놓자.


사칙연산의 계산순서를 모르면 '2 x 3 + 4 x 5' 의 답을 계속 50이라고 구하는 법이다. "틀렸어."라고 말해줘도 문제를 푼 사람은 왜 틀렸는지 알 방법이 없다. 문제를 풀 시간을 아무리 줘봐야 그는 한숨만 쉬고 있을 것이다.

 

"곱하기와 더하기가 섞여 있으면, 곱셈을 먼저 한 후 덧셈을 해야해."

 

그렇게 개념을 한 번 설명해주면, 아주 쉽게 26이라는 답을 구한다. 남자친구의 행동이 못마땅해 속을 앓고 있는 곰신들에게 난 '문제 푸는 법'을 알려주라고 권하고 싶다. 어떻게 하는 게 우리 사이를 더 생각하는 것인지 명쾌하게 알려주고, 바라는 애정표현이 무엇인지에 대해 남자친구와 대화를 나누자. 아무리 감정이 격해진 상태라 하더라도 절대로 다신 안 볼 사람처럼 등을 돌리진 말고 말이다. 남자친구가 오답을 구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넋두리를 하는 것보단, 다신 그 문제를 틀리지 않도록 함께 살펴보는 게 둘의 애정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