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을 통해 곰신에게는 열지 말아야 할 세 가지 판도라의 상자가 있음을 소개한 적 있다.
A. 메신저
B. 미니홈피
C. 메일
최근에는 군대 간 남친이 놔두고 간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경우가 있기에 곰신들이 열게 되는 판도라의 상자가 하나 더 늘었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지 않는 것이 진리다. 하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한 꽤 많은 곰신들이 상자를 열고, 즉시 멘붕에 빠진다. 그 안에서 '내가 알던 남친'과 다른 '낯설고 이상한 남자'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다정하게 날 부르던 모습과 달리 친구에게 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모습이라든가, 순수하고 밝던 모습과 달리 남친의 어둡고 습한 모습을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를 연 곰신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 '다른 여자와 대화한 남친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된다.
상자를 열어 알게 된 것을 남자친구에게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무 말 없이 헤어져야 하는지, 어디까지 이해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속으로만 앓고 있는 곰신들. 오늘은 그런 곰신들을 위해 가이드라인을 좀 마련해 보자.
판도라의 상자에서 이렇다 할 문제가 튀어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곰신들이 충격을 받는 것이 바로 이 '타인과 주고받은 곰신에 대한 얘기'다. 남자친구의 메신저에서
친구 - 이번에 오래 사귀네? 너 걔랑 결혼할 거냐?
남친 - 몰라. 봐야 알지.
친구 - 지은이(전 여친)랑은 완전히 끝난 거야? 연락 안 해?
남친 - 응. 안 해.
위와 같은 대화를 발견했다고 해보자. 남자인 내가 봤을 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저 기록을 발견한 곰신은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손을 부들부들 떨게 된다. 전화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편지에 보고 싶다는 말을 써서 보내며, 영원히 함께 할 것 같던 남자친구가
"몰라. 봐야 알지."
라고 말한 것을 봤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건 남자친구의 귀여운 허세라고 생각하면 된다. 거의 대부분의 남자가 타인에게 자신의 연애에 대해 설명할 땐, "내 연애는 내가 컨트롤 하고 있다."라는 뉘앙스로 말한다. 실제로 위의 상황에서 군화가 곰신에게 매달리고 있다 하더라도 "난 결혼할 생각인데, 곰신이 어떨지 모르겠어."라고 대답하는 남자는 없다고 보면 된다.
군화가 절친들과 서로 '여자친구 흉보기 배틀'을 벌인 기록을 봤다는 곰신의 사연도 있었는데,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철이 들어 '내가 누군가에게 여자친구 흉을 보는 건, 내 얼굴에 침 뱉는 짓이지.'라는 걸 안다면 그렇지 않겠지만, 군화들은 한창 쎄 보이고 싶어 하는 강박에 시달릴 나이가 아닌가. 친구들의 리액션에 들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 부분은 이해해 주길 바란다.
단, 그 대화가 선을 넘었을 경우 사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남친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곰신을 "~년"이라고 말했다는 사연과 둘만 알고 있어야 할 이야기들을 친구들에게 상스럽게 표현해 전했다는 사연, 곰신을 '군대용'으로 사귀고 있다고 말했다는 사연 등이 있었는데 그런 건 허세라기보다는 속마음에서 우러나온 얘기에 더 가깝다. 자기 여자를 아끼긴커녕 저속한 대화소재로 삼는 남자와의 연애, 계속 이어가야 할 이유는 대체 뭔지 냉철하게 생각해 보길 권한다.
남자친구의 메일함에서 '전여친과 주고받은 러브레터'를 발견한 뒤 질투심에 불타올랐다는 곰신들의 사연이 있었다. 그게 폴더까지 따로 만들어 간직하고 있다거나 지금까지 서로 메일을 주고받는 중이라면 '위험요소'로 볼 수 있겠지만, 차곡차곡 메일이 쌓여 저 아래 화석처럼 들어가 박혀 있는 거라면 그냥 말 그대로 '화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맺고 끊음에 있어 섬세하지 못한 남자들이 많다는 걸 이해해 주길 바란다. 청소에 비유하자면, 대충 책상 정리만 하고 방청소를 끝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은 거다. 과거의 기록이 남아 있는 건 아직 잊지 못해서라기보다는, 휴지통을 비우지 않은 거다. 휴지통을 비우지 않은 이유는 다름 아닌 '귀찮아서'고 말이다. (사실, 귀찮다기 보다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곰신이 군화의 과거와 싸우기 시작하면, 곰신은 곰신대로 질투심 때문에 군화의 모든 것에 불만을 품게 되고, 군화는 군화대로 자신이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까닭에 지치게 된다. 해결이 나지 않는 이 소모전을 벌이다가 헤어지는 커플이 종종 보인다. 군화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깨끗이 정리를 한 뒤 용서해 달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마음이 한 번 틀어져 버린 곰신은 군화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배신감과 서운함과 분노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모두 거부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론 군화가
"내 메일함을 왜 뒤졌냐? 왜 내 뒤를 캐냐?"
라며 몰아붙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곰신 스스로 군화를 다시 신뢰할 수 있게 마음을 열길 바란다. 군화가 사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곰신에게 확신도 줄 수 있도록, '믿음'에 대한 이야기도 둘이 나누고 말이다.
군화가 과거에 여러 여자들에게 찝적 거렸던 걸 발견했다는 곰신의 사연도 있었다. 그것 역시 곰신과의 '연애를 시작한 후'에 벌인 일이 아니라면 '남친의 흑역사'로 생각하길 권한다. 찝쩍거림의 흑역사가 전혀 없을 수 있는 남자는 '먼저 들이대는 이성들이 많지만, 연애에는 관심이 없는 남자' 밖에 없다. 단, 곰신과 연애를 시작한 후에도 군화의 흑역사가 진행 중이라면 그런 군화와의 연애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위의 '찝쩍거림의 흑역사'와 이어지는 부분이다. 군화가 곰신과 사귀기 이전 다른 여자들에게 "자기"라거나 "여보" 등으로 불렀다는 사연이 있었다. 상대와 군화가 사귄 것은 아닌데, 대략 그런 식으로 서로를 애칭으로 불러가며 놀았던 것이다. 이건 위에서 말했듯 '그 행동이 아직도 진행 중인가?'를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그 행동이 진행 중이라 군화에게 얘기를 했는데,
"예전부터 써 오던 애칭인데 뭐가 문제냐?"
"그렇게 부른다고 해서 정말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지 않냐."
"난 네가 다른 남자에게 그런 애칭을 사용한다고 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다."
따위의 반응을 보인다면 역시 그 연애에서 얼른 벗어나길 권한다. 군화의 행동이 곰신을 아프게 하기에 아프다는 얘기를 했더니, 아픈 걸 참으라는 얘기만 하는 군화에게선 벗어나는 게 정답이다. 곰신과 연애를 시작한 이후 군화가 더 이상 그런 애칭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과거의 행동은 군화의 어장관리나 인기관리를 위한 립서비스 정도로 보면 된다.
군화가 친척집에 간다고 했던 날이 알고 보니 다른 여자와 만난 날이라든가, 잔다고 해 놓고 '만남 어플'로 다른 여자와 대화를 나눴다든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여자들에게 '여자친구 없는 척'을 했다는 걸 발견한 곰신들도 있었다. 내 여동생의 남친이 그런 일을 벌인 거라면 난 도시락 싸가지고 동생을 쫓아다니며 연애를 그만 두길 권할 것 같다.
"그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군화가 정신 차리고 다시 잘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라고 말하는 곰신도 있을 수 있다. 그 물음엔, "그런 일 없이도 그냥 계속 쭈욱 잘 하는 남자가 있는데, 굳이 남친이 정신을 차리냐 못 차리냐의 외줄 속으로 여동생을 올려 보내고 싶진 않습니다."라고 답하겠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그대의 몫이니,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판도라의 상자'와 관련해 '군대에 있는 남자친구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서 싸우는 중'이라는 사연을 보낸 곰신이 있었다. 그 곰신은
"떳떳하지 못하니까 안 알려주는 거잖아요?
남친이 왜 자길 믿지 못하고 의심 하냐면서 화만 내던데,
안 알려주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요?
전 제 비밀번호 알려줄 수 있어요. 숨기는 게 없거든요."
라는 이야기를 했다. 난 그 곰신에게, "탐정이 아닌 여자친구가 되세요."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친밀해 질수록 말을 조심해야 한다거나, 가까워질수록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연인사이에 지켜야 할 예절'이 있는데, 그녀는 그 중 '사생활'에 대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검열하겠다며 비밀번호 내 놓으라는 얘기는, 눈앞에서 벌거벗으라는 얘기와 같다. 뭔갈 숨기고 있지 않더라도 그 요구만으로 충분히 불쾌하거나 자존심 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확인하고 믿겠다는 여자친구가 아닌, 비밀번호 없어도 남자친구를 믿을 수 있는 곰신이 되길 바란다. 신뢰에 금이 간다는 건 연애에 금이 간다는 것과 같은 뜻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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