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콘텐츠

병영생활백서 1화 - 입영전야

때는 바야흐로 2004년 7월. 당시 중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스물두 살의 방탕 가츠는 화려한 대륙의 밤 문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젊음이 좋았고, 사랑이 좋았고, 음주가무가 좋았다. 그날도 나는 여느 때처럼 밤새 놀다 들어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세월아 네월아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전화가 울린다. 따르릉~♪ 따르릉~♪

“웨이 니하오.”
“아부지다.”
“헉! 아부지, 별고는 없으셨는지요?”
“긴 말 필요 없고 속히 들어오너라!”

그렇게 나는 본국으로 긴급소환 되었다. 오랜만에 들어온 한국은 신천지였다. 무더운 여름, 짧은 스커트를 입은 한국의 누나들은 하나 같이 예뻤다. 한국도 좋구나, 에헤라디야~! 나는 횡재라도 한 듯 즐거워하며 집으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향했다.

“소자, 무사히 귀국하였습니다. 어인 일로 부르셨사옵니까?”
“그만하면 되었느니라. 이제 조국이 너를 부르는 것 같구나.”
“무슨 말씀이신지요?”
“군인이 되거라!”

헉!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전 해부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그 날이 온 것이다. 언젠가는 군대를 갈 거라고 막연히 생각만 하다가, 막상 현실로 닥치니 겁나 가기 싫었다. 사회가 아직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침대에 누워서 내 몸 상태에 관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프로파일링을 해보았다. 일단 손가락, 발가락은 다 있다. 키도 몸무게도 정상이다. 치아도 이상 없고, 수술도 한 번 한 적이 없다. 정녕 나는 군대를 가야 할 운명인가? 정신 상태는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이걸로 밀어붙이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큰 것 같다. 그나마 눈이 나쁘니까 시력으로 한 번 도전해 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허우대 멀쩡한 녀석이 일부러 공익근무요원으로 가려고 머리를 굴리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결국, 징병검사에 내 운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나는 별다른 준비 없이 병무청 사이트에서 징병검사를 신청했다. 해외에서 귀국한 자원(그들은 우리를 ‘자원’이라 불렀는데, 입대도 하기 전에 군수품이 된 기분이 들었다)들은 행여라도 금세 출국해 버릴까봐, 최우선 순위로 검사 날짜를 잡아주었다. 좀 여유 있게 잡아줘도 되는데, 뭐가 그리 급해요?

7월 22일 아침, 나는 혼자 차를 몰고 징병검사장으로 갔다. 같이 갈 친구도 없었다. 다들 이미 현역으로 입대해 버렸던 것이다. 차에 네비게이션도 없어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왠지 외로웠다. 친구들은 함께 가서 받았을 텐데, 혼자 가려니 어딘지 허전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징병검사 받으러 온 인원이 대략 200명 정도 되었다. 거기서 순번을 매겨주었는데 내가 당당히 1번을 차지했다(공부로는 단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먼저 검사를 받으면 먼저 집에 가는 시스템이니 좋긴 했다. 알고 보니 나이순으로 순번을 매기는데 그날은 내가 최고령이었던 것이다. 스물두 살밖에 안됐는데 말이다.

처음으로 한 것은 적성검사였다. 뭐, 부담 없이 맞는 말만 골라서 체크하면 된다. 문득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잔머리, 반대로 해볼까? 아니야 정신적인 부분은 건드리지 말자. 곧 평정심을 되찾아 열심히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혈액검사와 혈압검사. 문득 그게 생각났다. 고급스런 용어로 하자면 괄약근 힘주기(괄약근에 힘을 주면 혈압이 올라간다는 속설이 있었다). 힘줄까? 말까? 아냐, 그런 더러운 수법은 쓰지 말자. 소변검사도 한다. 소변에 침을 뱉을까? 내 머릿속은 여전히 현역과 공익의 기로에서 갈등 중이었다.

소변검사까지 마치자 우리를 탈의실로 집어넣고는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본격적인 징병검사가 시작되었다. 키 181, 몸무게 77, 혈압 121, 혈액검사 양성, 양성, 양성.... 이대로는 안 된다. 꼼짝없이 현역이다. 기본적인 검사가 끝나자 다음 방으로 이동했다. 호오, 수많은 책상에 의사 선생님들이 앉아있었다. 안과, 치과, 내과, 외과, 정형외과, 피부과, 신경정신과, 이비인후과, 비뇨기과 등 종합병원을 능가하는 포스였다. 문득 운동선수처럼 보이는 건장한 친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봉투가 빛나고 있었다. 내 손에 있어야 할 물건이 왜 저 녀석 손에 있단 말인가? 시기심과 질투심에 가슴이 뻐근해져 왔다.

시력검사를 받느라 기계를 눈을 대고 있는데, 맞은편의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는 매우 사려 깊고 인자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자네, 안경을 언제부터 착용했나?”
“초등학교 때부터 착용했습니다.”
“눈이 많이 나쁘네?”
“오오~! 그렇죠? 심각하죠?”
“음..... 알았네. 다음!”

앗, 이거 뭐야? 한 방에 끝난 건가? 공익 가기 완전 쉽네, 와우! 의사 선생님의 꽉 다문 입끝에서는 절대로 나를 현역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다음 검사를 받기 위해 이동했지만, 딱히 아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초고속으로 진행되었다. 그래,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자. 눈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잖아? 앉자마자 인사하고 바로 일어났다.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본인 확인을 하고는 모니터 화면 앞에 섰다. 모니터 화면에 검사 결과가 뜨는 것과 동시에 컴퓨터 음성으로도 판정 결과를 알려줄 것이었다. 속으로 ‘4급 공익! 4급 공익!’을 외쳤다. 컴퓨터에 최면이라도 걸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드디어 긴장의 순간, 내 심장이 뛰는 소리인지 모니터의 기계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관자노리께로 울려 왔다. 뚜뚜뚜.....

“831207-1XXXXXX 가츠님은 3 현역 대상입니다.”

고도굴절 근시라 3급이라는 판정 사유가 모니터에 떴다. 의사 선생님, 뭡니까? 내가 군대 못 갈 심각한 장애라도 있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후려치시는 건가요? 허탈한 마음으로 출입문 쪽으로 걸어 나가는데, 내 뒤에서 서류봉투를 들고 있던 몸빵 청년의 판정 결과가 내 귓가를 아프게 때렸다.

“4급 보충역 대상입니다~!”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왠지 그 서류봉투를 뺏고 싶더라니..... 그 뒤에 서있던 친구들도 연신 부러운 눈빛으로 그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 밥그릇을 뺏긴 강아지처럼 풀이 죽은 채, 나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징병검사장을 빠져나왔다. 징병관이 내게 했던 마지막 말이 운전대를 잡은 내 귓가에 윙윙 울리고 있었다. 너는 입영 영장도 최우선으로 나올 거다. 아마 한달 내로 나올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저런 심란한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가츠 청춘의  전성기였던 중국에서의 화려한 나날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돌아갔다. 여자친구의 슬픈 얼굴이 그 위에 오버랩되고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의 시동을 건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놀라운 현실 적응력을 자랑하는 샤바샤바 가츠의 머릿속에서는 ‘긍정’이라는 이름의 팝업 창 하나가 빛의 속도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가자!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왠지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 사실 중국에서 내가 좀 방탕하게 놀긴 했지. 반성도 할 겸, 저질 체력 보강도 할 겸, 군대 가서 열심히 굴러 보자. 이것도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우후훗~!

그렇게 나는 현역 입영 대상자가 되었다.

*    *    *

현역 판정을 받은지 6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민간인으로 지내는 마지막 날이다. 춘천 102 보충대로 입대하게 된 것이다. 입대하는 날이 되면 으레 여자친구나 친구들의 배웅을 받는다고 하는데, 마침 여친님께서는 해외로 가족여행을 떠나셨다. 하하, 그런 거다 인생은.....
춘천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가진 술자리에 친구들이 나를 격려하고 위로해 주려고 모였다. (사실은 위로하는 척만 하고 염장을 질렀다.) 친구들은 거의 현역에 복무하고 있었다. 그나마 남은 친구는 ROTC인 경호, 공익인 승재, 그리고 후다닥 군대를 갔다온 승우가 있었다.

“난 장교! 크하하.”
“난 공익이다! 푸하하.”

위로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갑자기 승우가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내 발치에 떨어뜨렸다. 뭔가 싶어서 주워 봤더니 전역증이다.

“난 예비역이닷! 킬킬킬.”
“●█▀█▄(철퍼덕, 졌다)!”

친구들의 감동어린 치어링을 받은 다음 날 저녁, 가족들과 함께 춘천으로 출발했다. 그동안 계속 혼자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입대하는 날만큼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갖고 싶었다. 춘천으로 가는 동안 피곤하신 부모님 대신 내가 운전을 했다. 시원하게 뚫린 중앙 고속도로를 타고 쾌속질주 하는데,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드라이브가 아닌가 싶다. 정말 중앙분리대를 들이박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

“이대로 사고 나면 입대 안 해도 되겠지?”

그러나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부모님과 동생을 보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신나게 달려 도착한 춘천 시내,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피곤할 법도 한데 꼭두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나는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콸콸 쏟아져 나오는 온수에 몸을 맡겼다. 이제 온수 샤워는 꿈도 못 꾸겠지? 아니, 샤워는 할 수 있을까? 하루아침에 모든 게 바뀔 텐데, 적응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고 보니 아직 머리도 깍지 않았다. 물기에 촉촉이 젖은 내 머리칼은 조명을 받아 섹시하게 빛나고 있었다.

“안녕, 마이 헤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샤워를 하고 나오니, 식구들이 모두 깨어났다. 이제 입대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4시간뿐이다. 서둘러 짐을 챙기고는 숙소를 빠져나왔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춘천 시내는 한적했다. 자고로 춘천에 가면 닭갈비를 먹어야지. 우리는 아침부터 닭갈비를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나섰다. 원조 닭갈비 골목으로 가려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 그냥 길가에 있는 정체불명의 식당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영업 준비로 분주하던 식당 아주머니는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아이고, 아들내미 입대하는가 보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셨다. 분명히 맛있는 닭갈비였는데, 아버지도 동생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나와 어머니는 좀처럼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식사를 하는데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애써 웃으며 통화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운지 어머니는 숟가락을 놓으셨다.



“얼른 전화 끊고 밥이나 무라.”

평소처럼 맛있게 먹지 못하는 나를 보며 많이 먹으라고 재촉하셨다. 나는 넘어가지 않는 닭갈비를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 식사를 마친 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아직 머리도 자르지 않았는데, 시간이 너무 지체된 것이다. 102 보충대로 가는 길에 마침 문을 연 미용실이 보이길래 잽싸게 들어갔다. 미용실 아주머니 또한 한 눈에 알아보셨다.

“어머, 입대하시는구나~!”

이거 뭐! 춘천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은 죄다 돗자리 깔아도 되겠다. 하긴 지금 우리 가족이 풍기는 분위기만 봐도 감이 오겠지. 아주머니는 바리깡을 손에 쥐고는 음산한 미소를 날리며 나를 향해 돌진했다. 차가운 바리깡은 내 머리 위를 신나게 달렸다. 바닥에 떨어진 수북한 머리칼을 보니 비로소 입대한다는 실감이 났다. 문득, 달라진 내 모습을 보고 슬퍼하시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돌아보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나란히 서서 서리가 내린 마당을 내다보며 즐겁게 웃고 계셨다. 역시 대인배이시다!
영락없는 군인머리를 한 나를 보니 영 어색했다. 표정이며 자세며, 당최 다 어정쩡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연방 브라보를 외치며 사진을 찍으셨고, 동생은 뭐가 그리 웃긴지 실실 쪼개고 있었다. 어머니는 팔짱을 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이야, 우리 아들 늠름하네! 누구 아들?”
“엄마 아들!”

‘궁디(궁둥이) 팡팡’ 세례까지 맞고서,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뒷좌석에 앉은 나와 어머니는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침에는 우울했는데, 이제는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 내게 닥칠 미래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저 멀리 102보충대 간판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주위에는 나처럼 부모님이나 친지들과 같이 온 청년,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청년, 여자친구 손을 꼭 잡고 있는 청년, 그리고 외로운 시라소니처럼 혼자 묵묵히 걸어가는 청년 등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적도 없고, 살아온 곳도 다르고, 하는 일도 천차만별인 그들과 내 공통점은 단 하나였다. 오늘부터 민간인이 아니라는 것.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살아왔다면, 당장 내일부터는 자신이 아닌 조국을 위해 살아야 된다는 거다. 먹고 싶을 때 원하는 것을 먹지 못하고, 나라에서 정해진 시간에 주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음식뿐만 아니라, 속옷부터 시작해서 신발, 모자, 치약, 칫솔, 휴지까지 모두 나라에서 주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 지금은 다들 개성 있고 다양한 모습의 우리들이, 내일부터는 통일된 복장을 입고 정해진 행동방식에 따라 생활해야 되는 것이다.

이윽고 정문 앞으로 교관과 조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출입문이 개방되더니 입영 병사와 가족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터쇼의 레이싱걸만큼이나 친절하고 멋있었다.

“입영 장정들과 가족들은 입장해 주십시오.”

교관과 조교들은 간결하고 절도있는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교관의 목소리에 따라 조용히 입영 행사장 쪽으로 걸어갔다. 우리도 그들 속에 섞여 정문을 통과했다. 102 보충대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내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구나.
의외로 부대 안의 전경은 평화로웠다. 드넓은 연병장과 규격화 되어있는 건물들, 잘 가꾼 나무와 화단, 내가 생각하던 살벌한 군대의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비록 3박 4일 동안 잠시 머무는 곳이지만, 군대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만만해 보였다. 그때까지는.....
부내 안에 난 길을 따라 얼마나 올라갔을까? 앞쪽에 스탠드가 보였고,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가운데 행사장에는 군악대 장병들이 우리를 위해 연주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경쾌한 연주도 내게는 슬프디 슬픈 발라드처럼 들려왔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군악대의 연주가 중단되었고, 중앙 단상에 교관과 조교들이 올라왔다. 가운데는 간부들이 있었고, 그 양 옆으로 길게 조교들이 도열했다. 삐까번쩍 빛나는 조교모, 화려한 휘장과 복장은 눈부셨다. 그들의 등장으로 장내에는 일순 적막감이 흘렀고, 곧 간부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았다.

“반갑습니다. 소령 아무개입니다. 추운 날씨에 먼 곳까지 와주신 가족 친지분들과 지인들께 감사드립니다. 입대 장정들은 이곳에서 3박 4일간 머물며, 기초 보급품과 훈련소를 배정받게 될 것 입니다.”

 이어서 여군 간부가 올라오더니 육군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빨리 좀 끝내라고 투덜거렸겠지만, 지금만큼은 그녀의 멘트가 영원히 이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짧은 설명를 마치고 어김없이 내려갔다. 바로 그때, 옆에 있던 군악대가 장엄하고도 엄숙한 연주를 시작했다. 흘러나오는 곡은 그 유명한 <이등병의 편지>였다. 순간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단상에 올라온 다른 간부가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
 
“입영 장정들은 모두 내려와서 체육관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간부의 말이 끝나자, 도열해있던 조교들이 양 옆으로 갈라지더니 체육관으로 가는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내려가는 장정들, 아마 그들은 혼자 온 사람들인가보다. 작별인사를 할 상대가 없으니 곧바로 내려가서 체육관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엉거주춤 일어나서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지도 못하면서 펑펑 눈물을 쏟아내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우시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봤다. 네 형제 가운데 외동딸로 태어난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오빠들과 남동생 사이에서 선머슴처럼 강하게 자라셨셨다. 스물네 살의 어린 나이에 나를 낳으셨지만 누구보다도 엄하게 키우신 우리 어머니. 내게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였다.
스무 살 나이에 나 혼자 중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도 활짝 웃으며 배웅해 주시던 그분이 지금 펑펑 울면서 내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계셨다. 아버지도, 나도, 동생도 당황했다.

“야야, 니 엄마 운다. 빨리 드가라(들어가라).”

아버지는 나와 마지막 악수를 하며,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빌어먹을 <이등병의 편지>와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합쳐져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던 나는 돌아서서 어머니에게로 뛰어갔다. 그리고 어머니의 두 어깨를 꽉 잡았다.

“울지 마, 쪽팔리게! 잘 갔다 올께. 민아, 엄마 챙겨!”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계단 사이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 한쪽에서는 친구들의 헹가래가 벌어지고 있었고, 떠나가는 남자친구를 보며 연신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있는 소녀도 보였다. 그때까지 살면서 가장 많은 눈물을 본 것 같다. 어느덧 그들의 울음소리와 파이팅 소리는 군악대가 연주하는 <이등병의 편지>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대한민국 땅에서 가장 슬픈 곳이 되어버린 현장에 있었다.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죽거나 다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사랑 때문이었다.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현실, 그것이 이곳을 가장 슬픈 곳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우리들은 울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는 군인이기 때문에.....

저 멀리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교관의 전투모가 유난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
  • 이전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