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0년, 참전 16개국을 가다


“한국인은 따뜻했다… 자유를 주고 싶었다”
장진호전투 참전 美메링골로 씨


“나는 선택받은 소수”

해병 1사단 소속으로 6·25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앨버트 메링골로 씨가 1일 워싱턴 시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찾았다. 그의 뒤로 보이는 19개의 동상은 장진호 전투에 참여한 미 해병대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미군은 일본이 제작한 지도를 사용하면서 장진(長津) 호수를 ‘초신(Chosin)’이라고 불렀다. 메링골로 씨의 모자에 쓰인 ‘The Chosin Few’는 당시 생존자들이 만든 단체로 미국에선 ‘선택받은 소수(chosen few)’라는 의미로 발음된다.

전쟁은 미국인에게 세계 지리를 가르쳐주기 위한 신의 뜻일지 모른다고 누군가 그랬다. 60년 전 6·25전쟁에 참가한 20세 안팎의 미군 장병에게 갓 독립한 저개발국 코리아는 들어보지도 못한 지구 저편의 어디인가일 뿐이었다.

앨버트 메링골로 씨(81)도 한국을 잘 몰랐다. 언젠가 희미하게 들어본 게 전부였다. 그는 해병 1사단 5연대 소속으로 6·25 발발 1개월 만에 부산에 도착해 각종 전투에 참여했다.

폭설이 내린 직후인 1일 오후 메링골로 씨는 기자와 함께 워싱턴 시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찾았다. 승용차에서 내린 그는 200m가량을 힘겹게 걸었다.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듯했다.

기념공원에는 그의 해병대 동료들이 눈밭에 서 있다. 2m 크기의 동상 19개는 장진호전투에 참가한 해병 장병들을 형상화했다. 장진호전투에서 미 해병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4000여 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보고 후퇴하면서도 영웅적으로 저항하며 중공군의 남진을 2주가량 막아 민간인 10만 명의 흥남 철수를 가능하게 했다. ‘위대한 퇴각’이었다.

메링골로 당시 일병도 장진호전투에 참가했다. 1950년 11월 29일 함경남도 장진군 유담리에 배치된 이후로 엿새 동안 영하 30도의 혹한과 싸웠다. 그는 이때 얻은 손발의 동상과 후유증으로 5개월 만에 본국으로 후송됐다. 그는 “듬성듬성한 풀이나 눈밭이 당시와 똑같다. (동상의 주인공인 19명은) 정찰에 나섰다. 정찰 땐 이렇게 간격을 둔 채 걸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병은 잠시 침묵에 잠긴 채 주위를 둘러봤다. 군화 속으로 맺힌 땀이 얼면서 생긴 만성적 동상, 깡통 쇠고기절임이 꽁꽁 얼었지만 불을 피우느라 적에게 위치를 드러낼 수 없어 언 통조림을 그대로 먹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떠올리는 듯했다.

“너무 추웠어. 맨손으로 소총의 금속 부분을 만지면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지.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수통에 든 물이 꽁꽁 얼면서 금속 수통이 터져버린 일도 있었소.”

불쑥 ‘중공군과 추위 중 어느 쪽이 더 싫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50 대 50”이라고 답했다. 해병대원의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자가 미국에서 만난 상당수 참전용사는 “추위가 더 싫었다”고 말했다.

▼ “꽁꽁 언 음식 씹으며 한국의 자유 위해 싸워” ▼

이어 ‘왜 참전했나. 미국에서 훈련받으며 편안히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질문에 그는 “조국의 부름을 받으면 어디든 간다. 난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결례를 무릅쓰고 ‘안 믿긴다. 그때 진짜 심정을 얘기해 달라’고 거듭 물었다.

메링골로 씨는 답변 대신 9·28 서울 수복 직후 가정집 수색을 벌이던 얘기를 꺼냈다. 당시 그는 시민들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전투식량(C-레이션)을 나눠줬다. 그런데 C-레이션을 받아든 시민들은 집 안에 들어가 깡통에 든 음식을 따뜻하게 데워와 내밀었다. 한국음식을 내 온 집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고마워하는 한국인을 만나면서 당연히 내가 한국에 와야 하는 이유를 확신했다. 따뜻한 한국인에게 뭔가 숨쉴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 동안 느낀 이런 뜨거움을 안고 귀국했다. 하지만 귀국 후 만난 미국인들은 6·25전쟁을 언급하길 꺼렸다. 메링골로 씨조차 “한국전쟁은 귀퉁이에 처박혀 버렸다”고 토로했다.

6·25전쟁은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 됐다. 그게 아니라고 얘기할 증인들도 이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가고 있다. 자부심과 회한을 동시에 안고 사는 메링골로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워싱턴=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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