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커플들이 '미묘한 틀어짐'으로 시작해 '너무 많이 틀어져 버린 우리'를 느끼며 헤어진다. 의견 차이로 큰 다툼이 있었다거나 둘 중 한 명이 바람을 피웠다거나 하는 '큰 일'이 없더라도, 미세하게 난 실금이 점점 깊어져 둘로 갈라지고 마는 것이다.
오늘은 내게 도착한 곰신들의 사연 중 '미묘한 틀어짐'을 겪고 있는 곰신과 군화의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그냥 두면 점점 멀어지다 다시는 얼굴 볼 일 없는 사이가 될 것이 뻔한 커플들. 대체 왜 그런 상황이 찾아왔으며, 다시 온전한 길로 들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자.
군화가 연락을 잘 하지 않아 화가 난 곰신의 사연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 연락을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에 자존심이 상했고, 하루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군화를 보며 그의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군화의 마음도 확인해 볼 겸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할 말도 없는 것 같은데, 앞으로 주말에만 통화할까?"
촉이 예민한 남자라면 저 말이, 곰신의 심사가 뒤틀린 까닭에 나온 말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군화는 둔했다. 그는 저 말을 듣고 '곰신은 주말에만 통화하길 원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래 그럼."이라고 답했다.
군화의 대답에 곰신은 분노했다. 물론 겉으로는 티내지 않았다. 주말에만 통화하자는 얘기를 한 것이 자신이었기에, 거기서 화를 내면 남은 자존심마저도 부서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둘은 '주말에만 연락하는 커플'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말만 그렇게 한 거지, 군화는 전화 할 거야.'
월요일에 곰신은 기대를 했다. 화요일엔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수요일엔 군화가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요일엔 버림받은 느낌을 받았다. 금요일엔 마음이 딱딱하게 굳었다. 토요일이 되어서야 둘은 다시 통화를 했는데,
할 얘기도 별로 없었고, 대화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뚝뚝하게 구는 곰신에게 군화는 "왜? 화났어? 무슨 일 있어?"라는 이야기만 했다. 그 말에 곰신은 답답함을 느꼈다. 마음에도 없는 말로 군화를 떠봤다가, 돌릴 수 없이 어긋나 버린 것이다.
꼭 연락이 아니더라도 휴가, 면회, 외박, 다른 여자와의 연락, 편지 등과 관련된 다양한 상황에서 상대를 떠보다가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곰신이나 군화들이 많다. 다들 상대가 내 속마음을 알아서 읽어주길 바라며 저지르는 떠보기인데, 그 결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니 상대는 그게 진심인 줄 알고 그 말을 따른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게 진심이 아니니, 필연적으로 엇갈리게 된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 한 적 있지만, 군화가 곰신에게 희생할 것을 요구해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콜렉트콜'과 관련된 문제로,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례가 많다.
'난 군대에 와 있으니까…….'
라는 마음으로 곰신이 전화요금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군화에게 고지서가 가는 것도 아니기에, 군화는 곰신이 부담해야 할 요금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진다. 그러다 어느 날 곰신이 전화요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난 군대에 와 있는데, 그 정도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건가.
내가 사회에 있다면 전화요금 가지고 이런 얘기는 하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서운해 한다.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저 생각으로 인해 군화는 곰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 모두에 실망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곰신은 곰신대로 차갑고 무뚝뚝하게 변한 군화에 대해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
외박이나 휴가를 나와서 돈을 쓰는 문제도 위와 마찬가지의 문제를 일으킨다. 군화의 입장에선 '오랜만에 나왔는데, 이런 것도 못 해주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 학생이거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곰신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 서로의 입장이 다를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서운해 하기 시작하면, 그게 행동으로 드러나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좀 황당한 경우로, 군화가 곰신에게 선물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부내 내에서 뭐가 필요하니 보내라든가, 아니면 나가서 입을 옷이 없으니 사달라든가, 밖에서 지불해야 하는 뭔가를 대신 내 달라고 한다든가 하는 경우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군대에서 고생하고 있으니, 이런 것쯤은 해줄 수 있지 않냐."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군화에게 맞추다 보면, 곰신은 자연스레 곤란을 겪다가 이별을 생각하게 된다.
한 쪽만 고생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일방적인 희생은, 그 사람을 지치게 만들 수 있음을 곰신과 군화 둘 모두 알아야 한다. 군화가 군대에서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해 이것저것 군화를 위해 희생하다가, 나중엔 그게 의무처럼 굳어져 난감해진 선배 곰신들이 많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연애를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다투게 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툼 자체가 아니라, 다툼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꽤 많은 수의 곰신 군화 커플이 다투고 난 후에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연락두절 상태로 진입한다. 대화 도중에 전화를 끊어버린다든가, 연락을 받지 않는다든가,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 행동들은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내성을 키우며, 이별에 서서히 면역이 되어가도록 만든다. 화가 나서 그런 거라곤 하지만, 그렇게 혼자 지내다보면 혼자인 것에 익숙해져 버리다.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애정도 조금씩 떨어져 나가, 나중엔 아주 작은 크기의 애정만 남는 법이고 말이다. 애정이 '화해를 해 관계를 다시 유지하고 싶은 의지'보다 작아지면, 이별이 된다.
또, 다툼을 그런 식으로 마무리 짓는 행동은 서로에 대한 피로도를 축적시킨다.
'더 말 해봐도 바뀌지 않을 거야.'
'나중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 때도 이렇게 등을 돌리겠지.'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연애를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몰라.'
따위의 생각을 품게 되고,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구는 동안 그것을 상대의 한계로 규정해 버린다. 이걸 두고 나중에 화해를 했으니 다 해결된 거 아니냐고 묻는 곰신들이 있는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화해를 하더라도 그 피로도는 마음에 축적된다. 다시 연락하고 지내는 것만 회복된 것이지, 전과 같은 애정을 기대하긴 어렵게 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군화와 곰신은 서로 조금씩 어긋난다. 여전히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긴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상대에 대한 한계를 짓고, 어느 부분은 포기를 하고, 또 어느 부분은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태도는 자연스레 둘 사이에 권태기가 찾아오도록 만든다. 상대에 대한 애정보다 의무감이 더 커져버린 상황. 당장 헤어질 것처럼 화를 내 상대에게 '충격'을 줄 순 있을지 몰라도, 그 잦은 충격이 둘 사이에 의무감만 남긴다는 것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감정이 상하거나, 화가 났다고 해서 '나'와 '너'로 갈리면 다시 붙이기가 어렵다. 떼었다 붙였다를 많이 한 테이프의 접착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굴지 말고, 섣불리 서로에 대해 한계를 규정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마음에 없는 말 역시 하지 말자. 수십 년 함께 산 부부도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이 있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하물며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기간밖에 함께 지내지 않은 곰신과 군화는, 더 말 할 것도 없는 것 아닌가. 상대의 마음을 떠보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던지는 것보다, 서로의 마음을 명확하게 전할 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마지막으로, 연애는 둘이 함께 하는 거라는 걸 늘 기억해 두도록 하자. 일방적인 희생이나 헌신은 언제나 문제를 발생시킨다. 여자친구가 엄마나 누나, 여동생의 모습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지만, 상대에게 '엄마'의 모습만을 보이는 건 그저 바보 같은 짓일 뿐이다. 이 '미묘한' 부분들을 잘 살펴 어긋나지 않는 연애를 하는 두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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