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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몰장병 유해 발굴 현장을 가다!

1년은 12달, 365일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죠. 사람들은 각각의 연, 월, 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예를 들면 5월은 ‘가정의 달’과 같이 말이죠. 그럼 우리에게 6월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TV방송과 라디오, 인터넷 등을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우리는 6월이 ‘호국 보훈의 달’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59년 전 6월 25일, 이 땅에서 민족상잔의 한국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 역시 수많은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동혁 기자가 간다' 그 첫번째 시작은 바로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다 장렬히 순국한 전몰장병 유해 수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유난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6월 취재팀이 경기도 광주시 오향리 앵자봉 일대에서 진행되는 유해 발굴 현장을 찾았습니다. 참고로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이란 한국전쟁 당시 자유와 평화를 위해 장렬히 산화했으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 13만여 호국용사의 유해를 찾아 국립현충원에 모시는 범국가적 보훈사업입니다. 선진국에 비하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발굴해 그 넋을 위로하고 유가족의 한을 풀어드리며 국민에게는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을 알리기 위한 취지로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니 유해 발굴 작업을 전담하고 있는 전문발굴병사들이 취재팀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준비를 마친 병사들과 함께 오늘의 유해 발굴 장소로 출발합니다. 앵자봉 인근 고지들은 한국전쟁 당시 썬더볼 작전이 펼쳐졌던 격전지라고 합니다. 따가운 햇살이 심술을 부리지만 간간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줍니다. 하지만 출발한지 약 5분 정도 지나자 병사들과의 거리가 점점 벌어집니다. 능숙하게 산을 오르는 병사들을 보며 갑자기 옛날 어르신들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도 왕년에는 한 가닥 했단다.’

마음과는 달리 몹쓸 체력 때문에 호흡은 빨라지고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 집니다. 그래도 젊은 병사들에게 질 수 없다는 각오로 죽을힘을 다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헉헉거리면서 병사들을 뒤따르는 취재팀의 모습에 병사들이 살짝 웃습니다. 한참을 산에 오르니 유해 발굴 현장이 보입니다. 아침 일찍 먼저 출발한 선발대 병사들이 부지런히 유해 발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몰장병 유해발굴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여기서 잠깐 전몰장병 유해 발굴 과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전사(戰史)와 각종 기록, 참전용사 증언, 지역주민 증언 등을 토대로 전몰장병의 유해가 있을 만한 지역을 선정합니다. 다음 해당 지역의 병사들이 금속 탐지기 등의 장비를 사용해 대대적인 탐지 활동을 펼칩니다. 만약 필요하다면 참전용사와 함께 현장답사도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을 거쳐 유해의 대략적인 위치가 확인되면 먼저 참전용사 유해발굴을 기원하는 개토식(開土式)이 거행되고 전문발굴병사들이 본격적인 유해 수습에 나서게 됩니다. 발굴과정은 전문발굴병사들에 의해 철저히 현장에서 기록되며 유해가 수습되고 나면 전몰장병의 넋을 위로하는 간단한 노제(路祭) 후 임시 봉안소로 운송됩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유해감식 단계입니다. 각종 첨단장비와 감식 전문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별과 연령, 그리고 최종적으로 신원을 확인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최첨단 유전자분석 기술을 갖추고 있어 유해의 신원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유가족의 유전자 정보가 부족해 유가족 공개 채혈행사를 통해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신원이 확인된 유해에 대한 영결식이 거행되며 이후 국립묘지로 봉송된 유해는 훈장 수여 및 합동봉안식 이후 국립묘지에 안치됩니다. 참고로 유해발굴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http://www.withcountry.mil.kr/)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날 취재팀이 방문한 유해 발굴 현장은 ‘유해발굴 세부 추진절차’ 중 2단계 발굴/수습단계에 해당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준비를 마친 전문발굴병사들이 본격적인 유해 발굴을 시작합니다. 이미 전날 발굴과정을 거쳐 유해 일부가 노출된 상태였기 때문에 의외로 작업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가장 먼저 사진을 촬영하고 현장 기록지에 유해의 위치와 형상을 그려 넣습니다. 오늘 발굴대상은 279 개인호입니다. 지난 3월부터 수도권 지역 유해 발굴이 시작된 이후 279번째로 수습되는 전몰장병입니다.


이들의 유해 수습 과정은 많은 부분에서 ‘ER’ 혹은 ‘CSI 과학수사대’ 같은 미국 TV 드라마를 연상시킵니다. 발굴병사들이 서로 협력하며 능숙하게 유해를 발굴하는 모습은 마치 외과 수술 장면 같고 발굴된 유해를 예리한 시선으로 식별하는 모습은 범죄 수사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간간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뜨거운 햇살도 나무숲에 가려 심술을 부리지 못합니다. 어디선가 왕파리들이 몰려와 주변을 시끄럽게 날아다니지만 병사들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발굴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니 발굴병사들의 발굴 작업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무더위도, 왕파리나 산모기도 아닌 나무뿌리였습니다. 발굴병사들의 무기는 꽃삽과 조경용 가위, 대나무 칼입니다. 도구를 활용해 최대한 온전히 유해를 수습합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유해 발굴에 참여했다는 채기홍 일병(22)은 능숙하게 유해와 나무뿌리를 구별해 냅니다. 전문가가 따로 없습니다. 발굴병사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고고학 혹은 사학, 역사학을 전공한 역사학도들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지난 역사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유해 수습이 막바지에 이르자 53년도에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몰장병의 유해가 형체를 갖춰 갑니다. 전투화와 박격포 가늠자 등 28점의 유품도 함께 수습되었습니다. 하지만 유해를 수습했다고 해서 모든 작업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습된 유해와 유품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유해의 입관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수습된 유해는 정밀한 유전자 감식 과정을 거쳐 신원을 확인하게 되며 함께 발견된 유품 역시 신원 확인에 결정적 단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행여 56년 만에 햇빛을 본 유골이 부서질까 유골을 다시 분류하고 한지로 싸는 발굴병사들의 손놀림이 조심스럽습니다. 조심스럽게 입관 작업이 진행됩니다. 유골함을 닫고 나면 마지막으로 태극기로 유골함을 감싸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다 산화한 전몰장병을 위한 예우입니다. 참고로 전몰장병 유해 발굴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장렬히 희생한 장병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대명제 하에 진행되고 있는 가장 상징적인 보훈정책입니다. 2001년 시작된 이후 올해 6월 1일 기준으로 아군 2,729구 및 적군 646구와 아직 감식 중인 168구를 포함하여 총 3,543구를 수습했습니다. 함께 발굴된 유품도 52453점이나 됩니다. 올 한해만 해도 벌써 아군 488구, 적군 32구를 수습했습니다. 이제 입관이 끝났습니다. 나머지 한 구의 유해만 수습되면 간단한 노제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시간은 이미 오후 1시를 훌쩍 넘겼습니다. 전투식량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이번 취재를 마무리 했습니다. 이날 생생현장 취재팀의 현장 방문 소감은 육군51사단 안현중 병장(23)의 말로 대신할까 합니다.

“이 땅의 모든 전몰장병의 유해가 수습되는 그 날까지 유해발굴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6월 한 달 동안만 반짝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유해발굴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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