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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고 겪는 세가지 증상

누가 장거리 연애를 힘들다고 하던가.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증폭시키고, 할 말이 뭐 그리 많은 지 전화요금에 대한 정신줄은 놓은 채 전화기가 뜨거워 질 때까지 통화하고, 내 하루를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사진도 찍어서 보내고 일기처럼 편지도 쓰고, 기회가 닿으면 서울에서 부산은 우습게 여기며 저 멀리 미쿡(시캐고 발음)에서도 날아오는 것 아니던가.

자, 여기까지가 대략 3달 간의 얘기.

그럼 그 이후 무슨 증상들이 나타나는 지 함께 살펴보자. 이 매뉴얼의 제목이 <곰신생활 매뉴얼>이긴 하지만 장거리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곰신'에게만 한정하지 않고 범위를 좀 넓게 잡았으니 제시카와 존슨이 보는 것도 괜춘하다. 언제나처럼 똥꼬에 힘 꽉 주고 출발해 보자.


1. 나 없이 지내도 행복해?


이게 좀 그렇다. 이산가족처럼, 친구들이 뭘 하자고 하든 "내 님"만 생각하고, "너 말곤 내게 아무것도 의미 없어."라던 좌우명에 어느 순간 변화가 온다. 사연을 보자.

여자친구가 회사에서 놀러가는 일이 투정을 부리더군요..
저랑 더 통화하고 싶고, 제 생각 하면서 차분히 보내고 싶은데
괜히 거기 따라가서 시간은 시간대로 버려야 하니 싫다고..
전 좀 걱정되는 것도 있긴 했지만.. 달랬죠..
그렇게 사회생활 하며 어울리고 사람들하고 지내기도 하고..
그래야 한다고.. 어디 산림욕장에 있는 펜션이라든데..
암튼 그렇게 여자친구는 회사 사람들과 놀러가게 되었고..
제가 전화를 하니... 펜션에 장식하고 게임하며 놀고 있다더군요.
지금 게임중이라 바쁘니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고..
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마음이 그러니 목소리도 다운이 되고...
여자친구랑 나중에 통화할 때.. 왜 그러냐며 계속 묻길래..
이러이러 했다고 얘기하다가.. 결국 싸우게 되었죠..


쉽게 말해 적응되어 간다는 거다. 정신적으로는 서로의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부재를 다른 부분들이 채워 가는 것. 어느 한 쪽의 문제가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발생하는 것이 정상인데, 이 시기에 한쪽에게만 변화가 오면, 결국 다른 한 쪽은 집착이라는 늪에 빠지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현재 사귀고 있는 사람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도 마음을 두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꼭 장거리 연애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상대의 '회사 회식'도 이해 못하고 그 시간 동안 자신의 피를 말리며 오만가지 상상과 생각과 의심과 실망과 절망을 반복하게 된다.

"나는 이 시간에도 숙희 생각 뿐인데, 숙희는 그렇지 않은가 보구나. 회사 회식자리가 더 즐거운 건가..."

이런 생각들을 마음대로 만든 뒤, 액자에 넣어 마음에 걸어둔다. 뭐, 여기까지만 진행된다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결국 헛발질을 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그 헛발질은 바로 "실망했다는 티를 마구마구 내기"라는 거다. 뭐가 불만인 지는 말도 안하면서, "아냐, 됐어."같은 말이나 하고, 기분 상했다는 것을 말 하나하나에 담아 전달한다. 이런 짓(응?)을 하는 본인도 괴롭겠지만, 상대는 더 괴로운 거다. 자신과 상대 모두에게 마음에 곰팡이 핀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하는 일이니, 이 글을 읽은 이후라면 절대 이런 짓은 하지 말길 권한다.


2. 안 반가워?


사람의 삶에는 '바이오리듬'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무슨 그래프 같은 거 얘기하는 게 아니고 '컨티션'을 말하는 거다. 사람이 365일 내내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낌새가 이상하면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긁어 "무슨 일 있어? 왜 그래?"와 같은 문제들을 얻어내게 된다. 이 부분 역시 여기까지만 진행되면 괜찮다. 그건 상대가 걱정되서 물어볼 수 있는 거니 말이다.

이 증상의 진행은 상대를 자신의 기준에 맞춰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상대가 밤을 새거나 추위에 덜덜 떨다 들어온 까닭에 글루미 모드가 되어도,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계속 긁어대는 것이다. 심한 경우는 상대가 아파서 그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통화하는 건데 왜 그래? 안 반가워?" 같은 식의 질문을 해 댄다. 난 여기서부터 이별의 냄새가 맡아지는데, 당신은 어떤가?

잘 모르겠다면, 위의 증상이 심화되었을 때를 살펴보자. 예전과는 조금씩 달라지는 상대의 모습에 불안함을 가지기 시작한다. 예전엔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면 "나도♥" 같은 답장이 왔는데, 이젠 하트가 빠져서 온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대원도 있었다. 내가 대신 하트 백 개라도 찍어서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다.

사람 마음은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좀 다른 예지만, 핸드폰을 처음 샀을 때를 생각해 보자. 보호케이스를 사고, 통화후에는 액정을 꼭 닦으며, 어딜 가든 꺼내서 이것 저것 눌러본다. 한 달쯤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보호케이스가 거추장스럽다는 걸 알게되고, 주변에 아무렇게나 놔둔다. 셀카를 찍으며 난리치던 초반과는 달리 전화와 문자라는 본래의 용도를 점점 되찾는다.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도 '거품'이 걷힌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친한 사이라서 함부로 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것만 제외하고는, 어느정도 서로가 익숙해져 가고 있는 거다. 내가 늘 하는 얘기고,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연애는 오래달리기가 아니던가. 처음에 마음이 마구 달려나갔어도 천천히 페이스를 조절하며 발걸음을 맞추는 것이다.

"전력질주도 할 수 있으면서, 왜 전력질주 안해?"

상대에게 이렇게 묻고 싶은가? 이렇게 재촉하고 다그쳤던 모든 커플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헤어졌다. 마라토너에게 전력질주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여름 밤의 꿈'이라도 좋다면 열심히 다그치기 바란다. 하얗게 타서 재만 남을 테니 말이다.


3. 잽 맞다보면 쓰러진다


날씨도 사바나의 우기 같이 우중충한데 결론을 이렇게 내서 미안하지만, 위의 '이별 엘리트코스'를 밟는다면, 헤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된다. 그만큼 위험하니까 제발 남들 다 자빠진 저 곳에서는 발가락에 꽉 힘이라도 주며 넘어지지 말라고 하는 얘기다. 전염병도 아니고, 똑같은 증세로 똑같이 서로 갈등을 겪으며 오늘도 누군가는 "넌 날 이해 못해."라는 결론을 내리는 거 아닌가.

남들이라고 해서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연애했겠는가? 물론 사람들은 자기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까닭에 남들의 연애는 가볍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들도 다 이런 저런 처방을 했다. 당분간 연락 안 하기, 무조건 사과하기, 달래기, 화 내기, 편지쓰기 등등 노력했단 얘기다.  

정말 웃긴 건, 위에서 말한 그 풍선 바람빠지듯 힘빠지게 하는 소리 때문에 갈등을 겪는 연인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싸운 뒤 화를 한 후에도 또 똑같은 그 '바람빠지는 소리'가 원인이 되어 무너져 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대원에겐 미안하지만, 잠시 대표적인 대화를 열거해 보자. 

남 : 오늘 면접 잘 보고 왔어?
여 : 어... 긴장 풀어지니까 너무 피곤하다.. 아우...
남 : 어땠는데? 합격인 것 같아?
여 : 결과 나와봐야 알지. 나 좀 잘게~
남 : ......
여 : 왜? 내가 잔다고 해서?
남 : 아냐...
여 : 왜 그래? 잔다고 해서 화났어?
남 : 아냐... 됐어... 쉬어..
여 : 진짜 또 왜 그래? 뭐 때문에 그래?
남 : 난 그냥.. 니가 힘들 것 같아서 웃게 해 주고 싶었는데..
여 : 오빠. 나 괜찮아. 좀만 자고 일어난다고 한 거 잖아.
남 : 알았어..... 쉬어....
여 : 오빠. 제발 좀.
남 : 뭘? 나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여 : 오빠 또 그러는 거잖아... 뭐가 또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잖아.
남 : 아냐. 끊는다. 쉬어...



위에서는 편의상 '남'과 '여'를 나눠 놓았지만, 저건 성별을 뒤집어서 써도 이상할 것 없다는 걸 잘 알리라 생각한다. 말로 설명하긴 좀 그렇지만 분명 찝찝하고 곰팡이가 피는 것 같은 대화의 느낌, 위의 예를 통해 느껴지지 않는가? 실망이 곧 흐를 것 처럼 듬뿍 묻어나고, 이쪽의 잘못으로 인해서 기분을 완전히 망치게 되었다는 표현을 꾸역꾸역 담아내는 대사들.

이쪽의 입장에선 정말 상대를 이해할 수 없고,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겠지만, 상대도 편하거나 현재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니다. 저쪽도 지금 괴롭고 울고 싶은 마음이란 얘기다. 왜? 사랑하니까.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을 컨트롤 하는 방법을 모르고, 너무 많이 받으려 하거나 너무 많이 주고 싶어하는 까닭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 스스로도 지쳐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일종의 애정겹핍 증상이라고 생각하며 특히 연애경험이 별로 없을 수록 벌이기 쉬운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세 가지 이야기만 써 놓으면, "왜 바람피워서 헤어지는 건 안 쓰셨나요?" 라거나 "처음부터 마음이 없던 경우도 있지 않나요?"라고 묻는 대원들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세 가지 이야기를 골라서 적어 놓은 이유는, 외부적인 요인보다 둘 사이의 내부적인 요인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이 많으며,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는 게 아닌 말과 글과 뉘앙스등에 의존해야 하는 '장거리연애'의 경우, 일반적인 경우보다 50%이상 위험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위의 글을 읽었다고 해서 위와 같은 상황에 놓인 커플이 먼지 털듯 위의 갈등을 털어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건 마치 '불은 뜨겁다'라는 경고문과 같아서, 당신의 화상을 원청봉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에 가까이 가면 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크던 작던 어떤 형태로든 불에 데어본 적이 있는 것 처럼, 위의 '강'을 건너야 할 시기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위에서 말한 걸 다 잊어도 좋으니, 이거 하나만 기억해 주길 바란다. 절대로 '헤어지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 그간 감정들을 다 토해내며 상대에게 상처주진 말길 바란다. 그건 깨진 유리잔을 사방으로 던져 버리는 일이다. 어떤 노력을 해도 결코 다시 붙일 수 없다.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없든, 당신이 사랑한 사람은 영영 죽고 다른 사람만 남게 될 것이다. 만약, 헤어진다면 그 상태 그대로 놔 두길 바란다. 그래야 내가 당신과 접착제를 들고 애라도 써 볼 것 아닌가. 그닥 밝은 이야기가 아니라 미안하지만,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 분명 훗날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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